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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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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15회 작성일 15-10-21 19:54

본문

희나리 / 향일화



밤하늘이 어릴 적 사랑방 아궁이 같아요 사윈 화톳불이 깜빡이며 꺼질 듯이 푸석거려요 매캐한 연기가 찌지직거리며 달빛을 가둘 때 맘속 비밀들은 구름 사이로 숨겨놓아요 달력처럼 한 장씩 저민 솔잎에서 우러난 차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번져요 처음 우리 만났던 날은 초승달이 내려앉은 밤이었지요 보름날엔 또 어떠했고요 서로에 대한 궁금함으로 활활 타올랐지요 별들이 낮에는 그리움을 꾹꾹 눌러 발효시키다가 밤이 되면 불씨들이 기지개키며 하나 둘 불을 지펴요 솔바람에 타닥타닥 반달이 화하게 번져 구들장이 솔향기로 화끈거리다 말라 갔지요 에필로그처럼 나이의 그믐이 짙어가고 주름진 손등처럼 눈에 비치는 별들도 침침해져요 이상해요 깡그리 말라버린 몸에서 슬픔이 아름답게 번져요 한장 한장 넘긴 달력 사이로 눈물을 쟁여 넣었는지 뒤척거리는 별빛만 보아도 울컥울컥 하다가 그 눈물을 짜내면 오히려 흐린 눈이 후련해져요 알고 보니 기쁨과 슬픔의 재료는 눈물이네요 그믐달이 보여요 달력 한 장을 또 넘길 때가 됐네요 묵혀둔 그리움이 어디쯤인가 하늘의 구석진 자리에서 투명하게 깜박이면 좋겠어요 내 안에 지펴 논 사그라지지 않는 불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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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李鎭煥님의 댓글

profile_image 李鎭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쁜 시간에 떡 한 손 쥐어주던 기억이 새록하네요.

벌씨로 가을 타는 세월, 다 그렇지요.

아래 시그린님의 글도 반갑더니
여기 또 반가운 글을 만나네요.

^&^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희나리, 덜 마른 장작 같은 마음...

아마도 끈질긴 눈물의 물기 탓일까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며, 더운 살점 다 날리고
뼈만 자란 나무들이 그리움의 숲을 이루고 있네요


참, 오랜만에 시를 접합니다

행간마다 그윽한 그리움을
독자로 하여금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하네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삭막한 가슴의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읽히고 싶은, 가품佳品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안. 건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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