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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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인 그는 말한다.
그녀 얼굴의 눈, 코, 입을 조각조각 상기하라고
눈은 어두운 암청색 별
코는 비음을 두드리는 곡철(曲鐵)을 연상하게하며
입은 먹성 좋은 염소처럼
굵은 나무둥치와 가시덤불조차 남기지 않을 거 같다.
그녀는 황색 거울 속에서 자주 튀어나와
그의 사소한 일조차 옥죄며 따라붙었다.
그녀는 지적이며 정열이 넘치는 마력의 여인, 간혹
잠자는 별, 외계의 눈물을 뭉뚱그리며 그의 앞을 지나갔다.
평범한 일상도 낯설게 하는 추상의 면면을
그 앞에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깨 뒤에서 부상하는 그녀의 손은 혀에서 마구 쏟아지는
자탄이나 비탄을 막을 수 없어 자기의 입을 간신히 가린다.
치렁한 긴 머리에 장식모를 쓰고 화려한 차림, 귀보다 커다란 귀걸이,
그녀는 그 앞에서만은 몸 밖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는 않는다.
파티에 나가는 밤
우울함 가득한, 괴팍한 그녀는 옛날처럼 아름답지 않다.
마스카라로 길게 치켜 올린 눈썹
해체된 표정 속에서 낭만을 이야기해도 예전처럼 다정할리 없다.
그녀에게서 점점 고독한 입체파가 되어갔던 그는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뜯었다 다시 조립하여 붙였을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서 전쟁의 공포로 얼룩진
어두운 세상의 단면이 나왔다.
그도 그녀의 입체적인 수다를 막지 못하고
그녀만을 위해 인상파나 낭만파가 되지 못했네.
하지만 한때 그녀만을 고집하던 그로서는
그녀를 다양한 각도에서 사랑해야 했으므로
점점 입체파의 대가가 되어갔다네.
피카소의 슬픈 도나마르*, (우는 여인)를 상상해보네.
* 도라마르: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
* 우는 여인: 피카소는 도나마르의 초상, 우는 여자 등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당시
전쟁의 공포와 슬픔을 여인의 다양한 표정에 담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주 (전적으로 이글은 본 작자의 상상에 착안한 글이므로 실제 그림의 사실적 해석과
인물의 사실적 성격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森羅萬象님의 댓글

언젠가 콜라주에 대해 생각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입체파라는 단어가 가지는 깊이란, 그리고 또한 이 시가 주는 전율이란.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