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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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악보 없는 창법이 소를 몬다
네 박자 빠르기로 전주곡 쟁기를 끄는 우공
겨우내 굳은 땅 풀리는 후렴 푸석거린다
농부가 거름 뿌려 파종을 할 참인데
밭을 갈다 말고 멍하니 서버린 소
잊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큰 눈망울에 든 농서(農書) 한 권이 흙판본이다
지난해 풀 매던 호미 고랑가에 녹슬고
퇴비 담았던 비닐 두엄냄새 펄럭인다
젊은 피는 도시로, 도시로 흘러만 가고
휘어진 낫들만 남아 이우는 땅
올해도 어김없이 계절풍은 부는데
재 너머 묵정밭 일구던 노인 보이지 않는다
워워,
누군가 땀방울 흘린 곳마다
어린 것들이 까치발 돋을새김을 한다
고향 떠나 햄버거 먹는 사람들이
콘크리트 생(生)을 쓰레질하는 사이
삭풍이 가시지 않은 텃밭의 혁명
마늘씨가 농토 지키려 초록 집회를 연다
벌써 누렁이는 농사직설을 다 읽었나
워낭소리 밭둑길을 감아 집으로 가는 저녁
노을 너머로 책은 멀어지는데
농부가 고삐를 당긴다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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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현로님의 댓글

으햐, 너무 좋은데요.
꼭꼭 씹어야 하는 밥처럼 여러 번 읽을수록 맛이 베어 나오는 시.
'휘어진 낫들만 남아 이우는 땅'을 찾아서 국토대장정을 했더니 몸과 마음이 멍합니다.
쓰레질 해야 할 공구리가 많아서 오늘은 일에 집중해얄 것 같습니다.
구월 잘 정리하시고 즐거운 시월을 맞이하시길.......
현탁님의 댓글

이랴...
이 소리는 사라졌어도 매일 귀전을 모는 일상
오늘도 나의 고삐를 당기며 출근했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우공처럼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술술 읽히는 잘 삭힌 시
읽고 갑니다
김은유님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맑고 분명하고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