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詩想)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는 것들 > 창작시

  시상(詩想)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는 것들

  정민기

  찌그러진 양푼
  땡땡 오그라진 불알
  지스락물*을 받는 고무통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진 아이
  개장수 트럭에 실려 가는 개
  허름한 옷 입고 들어오니 숟가락 하나
  더 놓아주는 식당 아줌마
  커피 자판기에 컵이 떨어졌는데
  그 앞에서 자판기만 애처롭게 보고 있는 남자
  개구멍에 걸리는 바람에 잡힌 도둑
  사실 걸린 것이 아니라 개가 옷을 물고 있었을 때
  애인과 헤어질 때 안녕, 하다가 전봇대에 부딪힌 남자
  음료수 캔 고리가 떨어져 나갔는데
  계속 캔을 따려고 하는 사람
  시상(詩想)을 떠올리는데
  펜은 없고 화이트만 있어서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지워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 때

  * '낙숫물'의 전라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