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 하나에서 둘 Dyad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둘이 하나, 하나에서 둘 Dyad / 강경우
숟가락 匕, 두 개가 나란하다 比, 북두칠성의 국자는 조개와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은 1:1의 대비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동일성의 사유는
비판 받아 마땅했다
2+2=2ⅹ2
끝없는 자기 복제의 길
1·2·4·8·16·32·····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끝없는 대결
陽 속의 양과 음
陰 속의 양과 음
是도 一是非요. 非 또한 一是非이다(장자) 그러나
一口二言의 부정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베시카 피시스의 두 원의 중심을 이은 선은 가장
짧을수록 좋다
복희와 여와의
곱자와 컴퍼스
영원무궁의 창조를 위하여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안으로 들어오지 말라(플라톤)!”
不二한 뫼비우스의 띠는 한 면뿐이다. 안이 바깥이 된다.
그래서
세상은 둘이 하나일 때 가장 아름답다할 것이다.
================================================================================
*디아드Dyad : 이원론. 2.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지 대비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소설『백경』의
저자, 미국, 허먼 멜빌. 1819~1892).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융은 페르소나를 정신의 ‘겉면’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세계를 향해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내면’을 그는 남성의 경우 아니무스라
고 불렀다. 아니마의 태고유형은 남성적인 정신에서의 여성적인 측면이며,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여성적인 정신에서의 남성적인 한 측
면이다. 모든 사람은 남성도 여성도,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생물학적 의미에서도 이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융 심
리학 해설』C.G.융 등 공저. p.98. 선영사. 1987).
*物无非彼,物无非是. 自彼則不見,自是則知之. 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 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无彼是乎
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无窮. 是亦一无窮, 非亦一无窮也. 故曰莫若以明(莊子.「齊物論」).
사물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남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스스로 아는 것만 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은 이것과 저것은 서로 잇달아 생긴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잇달아 생기
자 잇달아 죽고, 잇달아 죽자 잇달아 생긴다. 옮음이 있자 곧 옳지 않음이 있고, 옳지 않음이 있자 곧 옳음이 있으니, 옳음은 그래서 옳다
가 그래서 그르고, 그래서 그르다가 옳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유 없이 하늘에다 비추어보는 것이니. 그 또한 까닭이 있음이
다. 곧 이것은 저것이며 저것은 곧 이것이니, 저 또한 일 是非요, 이 또한 일 是非다. 그러면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
은 과연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을 갈라 세울 수 없는 그곳을 道의 기도리라고 한다. 기도리(문의 회전축을 고정 시키는 곳)라야만 비로
소, 그 고리(環)의 한 복판을 얻음으로써 무궁에 응하는 것이다. 是 또한 하나의 무궁이요, 非 또한 하나의 무궁이기 때문에, 밝음(本然의
明)으로써 하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