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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삼 년 만인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놈들끼리 모래시계 뉘어놓고
양평 백안리 한적한 산골로 내리 꽂았는데 말이지
가슴에 담긴 첫사랑 얼굴 품어 올리던 그때가 이랬을 라나 을마나 설레는지 말여
가서 쐬주 궤짝 내리는데 글쎄 감로수 뚝뚝 떨어지더라니까
좋구나 좋아 초저녁부터 퍼 마시다 한 놈은 쓰러지고
누가 삼류 아니랄까 봐 한 놈은 똥시를 써서 읽어대고
또 한 놈은 돌연 변태가 돼서 뽀뽀질을 해대고
마누라에 차인 녀석은 훌쩍훌쩍 울어대고 말이지
그 아름다운 난장판을 달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모래시계를 빠져 나온 시간은 뭐 그리 바삐 내빼는지 서둘러 동이 터 오더라고
그렇다고 자빠져 잔다면 산 신령님께 무례지
죽은 놈은 살려내고 밤새 연명한 놈들까지 모조리 우르르 산책을 가는데 말이지
물 흐르는 소리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며 귀가 확 깨고
꽃 진 자리에 손톱만한 열매들 주렁주렁 이슬에 멱감고 있는 옆으로
수국인지 불두화인지 우리에게 반색을 하고 말이지
기분이 쇠고랑 벗어낸 가벼운 발목 같더라니까
햐! 상쾌하다 그러면서 오르막 산길을 더 올라 가는데 말이지
이런 우라질! 신의 뜨락에 웬 인간의 궁궐
저만치 가팔진 등성이에 겁나게 좋은 집 한 채가 보이는거여
인기척을 듣고 개 새끼가 컹컹 짖어대더군
좀 더 올라 갔더니 길은 끊기고 큼직한 팻말 하나 세워져 있는데,
–관계자외출입금지-
오호라 관계자! 개야 짖어라 짖어 하고는 용감해 졌지
팻말을 뻥 걷어 찬 거야 우린 상관없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도 그럴 것이 말야
우린 밤새 관계한 者들이었거든
어스름엔 연지 곤지 찍고 분 바른 꽃 색씨들 치마도 들춰보고
수목들 내뿜는 숲 향기 암내에 추파도 던져보고
달빛과 수작하는 우릴 시샘하는 별빛도 불러다 술 상에 앉히고
밤 깊어 히잡 두른 구름처녀들까지 내려 앉혀 자리를 같이 하다가
급기야 동석한 숲 속 여인네들 속곳 벗기고
원앙금침은 아니라도 여름이 걸어둔 홑이불 걷어다 깔고는
아으으 아으으윽 황홀한 신음을 게워내서
두고 온 시름을 한껏 욕보였으니
이것이야 말로 운우의 정을 나눈 관계,
뼈와 살을 태우는 관계
가 아니고 뭣이겠어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운우의 정을 나눈 관계 뼈와 살을 태우던 관계
대단한 입심에 경륜이 비치는 글향
관계자 외라 잠깐 훔쳐보고 갑니다
즐거웠겠네요
감사합니다
윤희승님의 댓글

허접편에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건필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