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들에게 보내는 편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날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 필 영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님.
당신의 그 하늘엔 지금도 계절이 지나가고 있나요?
여기 제 하늘엔 지금, 여름이 한창 지나며 가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감중련 깊고 당신 같은 청년이었던 아이는
지나는 계절 속에 세월을 먹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푸수수,
바람에 떠밀린 햇살이 창가에 부서지며 먹먹한 울림이 됩니다.
이웃집 택배 오는 소리랑, 길 건너 자동차 지나는 소리랑
이따금 들리는, 자지러지는 아이들 웃음소리...... 모두가 다
바람에 날리는 햇살에 버무려져 파란 하늘 속으로 침잠합니다.
갑자기 두어 평 남짓한 방이 넓어집니다. 바다처럼 넓어집니다.
엇 저녁 마신 술 취기인가 둘러보지만 방은 이미
깊고 커다란 동공이 되어, 가쁜 숨이 메아리가 됩니다.
두렵진 않지만 그 울림은 울음이 되고 맘도 덩달아 슬퍼집니다.
벙어리저금통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지난시간들을 꺼내 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민들레가 피어나고,
호로로! 하얀 새 한마리가 날아올라 어둠이 되고, 그리고,
그 어둠에서 까만 어린아이 하나가 빤한 눈길로 걸어 나옵니다.
아주 낯익은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참 슬퍼 보이는 얼굴입니다.
눅눅한 설움이 밀려와 흰 눈 펑펑 쏟아지는 겨울을 생각합니다.
시뻘겋게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집힌 황토아궁이를 생각합니다.
......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장작불에 삐거덕 삐거덕 동굴이 열립니다.
찢어진 풍선처럼 찢어져버린 창으로 하늘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실루엣처럼 서있던 아이가, 서글픈 눈길만 남긴 채 돌아섭니다.
바람이 붑니다. 세찬 바람입니다. 낡은 스크린처럼, 하늘이 탑니다.
이웃집 담장에 걸친 감나무가지에 실 끊긴 연처럼 가을이 걸립니다.
돌아서가던 아이의 검은 그림자가 감나무 잎 속에 얼굴을 묻습니다.
2015. 08. .
댓글목록
묘향심.님의 댓글

이런글 참 오랜만에 읽어 봅니다
다들 시류를 따르느라 행간에 매달려 성품을 보지 못하는 듯 합니다
오늘 誕无님이 일러주신 귀한 말씀 새겨봅니다
불불반조(佛不返照) 간서무익(看書無益)
모든 글과 말은 자신의 본래 성품에 비추어
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
이 가을에 흠뻑 읽고 싶은 편지입니다
감사로 추천합니다
김필영. 구, 정렬님의 댓글

이 글을 쓸 때 마음이 참 서글펐는 데
공감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늘은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지난 세월이
푸석해 질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유한 한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자들의 숙명이겠지만요. 또 가끔 이렇게
투정도 하게 되네요. 보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