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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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들판을 가로질러
긴여름의 끝,
귀뚜라미 매미소리와 함께 간이역에서
가을로 가는 기차를 탄다.
가을은 완행열차.
풍성한 먹거리가 있고
사람들의 후한 인심이 있다.
나뭇잎은 멋진 날개짓으로 가을을 그리고
사람들은 벤취에 앉아 명작을 대한다.
오막살이 기찻길옆 수수대가 여물고
아이와 함께 한 따뜻한 날들이 철로처럼 길게 새겨진
어머니의 이마에도 깊은 가을이 오고 있었다.
이제 고향역에는 완행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두만강~푸른물에'란 노래와 최백호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란
노래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은
'쇄~에~앵'이나 '슈~우~욱'이란 의성어에 익숙하여
'칙칙폭폭'하는 기차소리는 사전에서 사어로 접할 뿐이다.
빠르게 덜컹거리는 랩에 익숙해진 고속열차의
도회적으로 바뀌어 버린 귀의 주파수는
트로트를 틀고 배달가는 퀵서비스 스쿠트의
문화적 이질감에 덜컥 짜증이 나기도 한다.
가을이라 하기엔 아직 이른 8월의 하오,
비스듬히 늘어진 거추장스런 그림자를 떼어버리려는 듯
완강히 달리는 고속열차는
간이역에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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