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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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혜화역 1번출구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아래
철퍼덕 주저앉아 보름달을 먹는다
끼니 거르지 말라던 생전의 어머니 말씀 생각나
배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보름달
신호가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는 건널목
걸개그림 우쭐댄다 카페와 주점과
극장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
목마른 젊음이 숨 가쁘게 몰려온다
수천 개의 노란 리본을 만장처럼 매달고
겨우내 을씨년스런 소리로 울부짖던 나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넓고 푸른 잎사귀를 자랑처럼 펄럭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보름달을 뜯어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보름달
벤치를 통째 전세 내 낮술을 마시던
노숙의 움푹한 눈이 물끄러미 건너다 본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유유상종이란 말,
매미떼 고막을 찢어발길 듯 그악스레 울어댄다
아직 몇 모금의 이슬이 남았는데
소주병을 움켜쥔 채 까무룩 잠이 든 노숙
바람이 분다 잊었던 끼니가 손을 내민다
저 손을 잡아야 하나 뿌리쳐야 하나 고민하다
그만 하얗게 세고 말았을 노숙의
머리맡에 보름달 하나 올려놓고 일어선다
댓글목록
고현로님의 댓글

인디고님의 보름달 끼니,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
인디고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고현로님
좋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분발하여 더 좋은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