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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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즐거움
멍 때릴 수 있어 좋다
어색한 일이 있을 때 못들은 척,
못 본 척하면서 서로 알아도 넘겨주고 넘어 간다
옷이 그 자리에 꼭 어울리지 않더라도 괜찮다
패션감각이 둔화 되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반바지 슬리퍼도 용서 받는다
돈이 별로 없어도 좋다
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에 작은 참치 캔이면 딱 좋다
막걸리 마시면서 고급 안주 먹겠는가
혼자서도 둘이서도 늙으면 술 마시기 편해서 좋다
산책길에 오전부터 벤치에 죽치고 앉아 있어도 누가 거뜰어 보지 않아 좋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사람 눈길로부터 자유롭다
어슬렁어슬렁 걸을 수 있어 좋다
잠깐 쳐다볼지언정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늙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꼭 해야 할 일이 없어서 좋다
젊었을 때는 무엇인가 꼭 이루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프리다 목표의 프리랜서란 말이다 되면 좋고 안 되도 좋고
건강도 경제도 여러 가지로 힘들다 보니
연애할 마음도 없어지고 더불어 그런 것들이 멀어지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성을 봐도 보고 싶은 곳만 골라서 적당히 눈치껏 편하게 볼 수 있다
상대방도 신경쓰지 않는다 자기의 성 정체성을 적당히 버리기만 하면 된다
젊은 날에는 이루어 진 것도 별로 없었지만 무조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했다 지금은 살아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 행복하다
무엇을 먹던 무엇을 마시던 어디를 가던 무엇을 입던 일단
살아있기에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사람을 보거나 좋은 것을 먹거나 꽃을 보거나 할 때
이제는 내 생애 몇 번쯤 남았겠다, 라는 생각에 보고 듣고 먹는 것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참 옹골지다
늙을수록 살맛나는 것들이 참 많구나, 요즘 드는 생각이다
댓글목록
石木님의 댓글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늙어간다는 것이 시들고 무기력하게 되는 퇴출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에 문제가 있지요.
"너 늙어 봤니? 난 젊어 봤다."
한 노인이 젊은이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은 이것이 단순한 우스개 소리로 끝나는 말이 아니고, 그 안에 깊은
진실이 함축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층 건물의 관리인은 1층과 2층 밖에 모르지만, 20층 건물의 관리인은
1층에서 20층까지를 다 알고 있지요.
노인은 그의 내면에 젊음을 거느리면서 늙음을 체험하는 사람이지요.
이 진실은 부인한다면 굳이 젊음 이후에도 살아 남아야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젊은이들도 미래의 늙음을 긍정하는 자세로 살아야 옳을 터이지요.
봄뜰123님의 댓글의 댓글

石木님 들려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옛날에는 좀 슬픈 일이었는데
요즘은 한가히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새도 보고 꽃도 보고
젊은 사람들도 구경하고, 옛생각하고..
단지 몇번 안남았다는 것 빼고는.. 다 즐겁습니다. 몇번 안남은 것도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숫자적으로만 더 많을 뿐...
좋은 날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