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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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먹강 내 강을 건너간 사람이 있었다 그때 물이었던 내가 떠밀어냈다 잡을 수 없는 물의 끈들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것이 왜 허랑한 끝말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떠났다 몸을 일으킬 수 없는 강일 때 나를 저어간 사람이 있었다 등불이 켜지면 불현듯 한쪽으로 몰려가는 어둠 끝에 서 있었다 등불이 멀리 쳐다보고 있을 때 등불 아래 어둠이었다 울섶에 기댄 말 여울지던 물가엔 귀머거리새가 울었다 강물은 등뼈를 뒤틀며 들썩이는가 왜 그런 것인가 묻지 않았다 흐르다가 멈춘 적 없어 흐를 뿐이라고 젖은 옷 마르기도 전에 다 잊는 거라고 부챗살 펴진 먼 하구로 가서 거먹구름 끌어 덮고 그예 잠기는 거라고 맨발로 걷는 강가 울먹울먹 저무는 강물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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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연님의 댓글

작가의 노트
최형심
아직 당신을 잊지 못한 곳엔 벗어놓은 무늬가 있다.
나는 가슴을 봉인하고 혼잣말의 시간에 살았다. 시를 데려오는 동안 당신은 내게 오래된 한 벌 손을 입혀주었다. 텅 빈 세시를 이름으로 걸었다.
오른쪽만 그리워할 때면 팔꿈치를 접은 어느 뺨이 유리조각처럼 반짝였다. 얼굴을 횡단하는 난청 속에서 나무가 봄을 나고 있었다.
뻐꾸기시계는 미래 쪽으로만 돌았다. 벨지움의 들판 어디쯤 남긴 반지를 잃은 손가락이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나는 가끔 다른 나라의 바람으로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아마 시는 나의 호흡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람만으로는 한 장의 종이도 넘길 수 없어 날숨만 묻은 종잇장들. 시를 통해 세 끼 슬픈 안부를 읽던 우리의 시절은 앞뒤가 없어 좋았다.
아프게 접힌 편지들은 뒷면이 없었다. 그늘은 벽에 기대지 못했다. 어떤 편지도 갑골문자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비틀린 말들을 쥐고 있던 물집에 갇힌 당신. 말들이 푸른 등뼈로 지낸 시간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천 개의 주름으로 접힌 말들에는 그림자가 묻어있었다.
당신의 발자국은 아무도 모르는 밤의 어깨뼈를 닮아있었다고 이제, 텅 빈 호흡을 놓아준다. 나는 비로소 미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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