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않는 산 > 창작시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오르는 곳, 천황봉
계룡아래 유년을 통째로 묻고도
난 아직 천황봉을 오르지 못했다.

계룡의 봉우리에는 산신이 산다.
달이 계곡에서 몸을 씻는 날에는
그를 만나려는 무녀와 박수들이
방울소리 울리며 산신을 부르고
속세의 소원 간곡히 고하느라
맑은 달 아래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인다.
그때마다 천황봉 산신은
모든 산신 불러 앉혀놓고서
줄 것과 말 것을 구분하라 이른다.

한바탕 춤이 끝날 무렵
밤새 구경하던 나무들과 무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작두날 같은 푸른 새벽을 맞는데
그때 천황봉산신은 소나기 불러와
그들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 내린다. 

내가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천황봉에 오르지 않는 것은,
오르지 못하는 봉우리 하나
유감없이 남겨 두는 것은
살아가며 이루지 못할 소원 하나
미련 없이 남겨 둔 여유 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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