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딱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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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밖을 내다보라고 했습니다
쉼없이 쏟는 빗줄기 사이로 우산 밑에 서있는 그대가 보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싱그러운 웃음이었습니다
가슴이 부풀어 올라 금새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우리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길가 돌 위에 비를 맞고 앉아있는 새가 부러운 듯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새를 보았다면 아마도 슬펐을 터입니다
우선 강가에서 피자를 먹었습니다
어떻게 씹히는지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런 것들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피곤한 듯 설레인 그대의 눈과 가볍게 떨리는 하얀 손이
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워 근처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샀습니다
내 심장소리가 빗속에 뛰는 속도보다 더 빨랐습니다
흠뻑 젖은 나를 놀라서 보다가 내민 장미를 보고 그대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그녀는 한 손에 장미를 들고 한 손은 나의 손을 잡고 우리는 애들마냥
강둑길을 무작정 걸었습니다
둘 다 몽땅 젖은 쥐처럼 보여 서로 마주보며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술 마시기에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주량이 제법 센 그녀와 저녁도 잊고 북적이는 술집에서
밤까지 곱창에 술을 마셔댔습니다
조금 흔들렸지만 조금도 흩트러지지는 않았습니다
동안의 그리움과 밀린 이야기들이 가볍게 서로의 눈길처럼 오갔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서 우리는 아주 가벼운 입맞춤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산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보처럼 빙긋 빙긋 웃으며
하늘보고 빗속을 홀로 걸었습니다
그날은 사랑과 술과 비에 젖은 살기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댓글목록
은영숙님의 댓글

봄뜰123님
고운 시를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우리 인생에 딱 그렇게 우연이든 필연이던
살기 즐거운 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운 꿈 꾸시옵소서 시인님!!~~^^
봄뜰123님의 댓글의 댓글

은영숙시인님.
힘드신데 이렇게 댓글도 달아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
장마라 해도 습한 것이 더욱 더워를 부르는 날씨입니다
너무 즐거우면 슬픔도 그만큼 클거라 생각합니다.
슬픔 뒤엔 또 기쁨이 오겠지요.
성하지절에 몸건강 지키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빕니다.
좋은 밤하시길..
현탁님의 댓글

그녀는 지금 그날로 머물러 있겠죠
추억은 늘 소설처럼 포장을 하고 있으니까요...........ㅎ
봄뜰123님의 댓글의 댓글

딱 살기 좋은 날들은 소설을 닮았나 봅니다.
늘 돌아보면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현탁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