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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투명한 정적 속에 반짝이는 정오(正午)이다 하늘 오르는 연기처럼 출렁이는 미지의 행복을 맑은 눈동자에 담고, 구름의 바다를 헤엄쳐가는 인어이다 먼 곳의 마른 번개는 그대 고운 머리카락의 장식품이런가, 단아하고 보드라운 형태로 따뜻한 감성(感性)의 띠를 두른 얼굴은 모든 사랑의 표정을 짓고, 미친듯한 세상의 소음(騷音)은 숨죽인다 불타는 산이 격정의 음표(音標)를 찍어 나른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타다 남은 나뭇가지에 잔뜩 걸려있는 옛사랑의 증거이다 지하철 붉은 레일로 두근거리는 거리를 밟고, 새로운 침묵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로 마지막 숨을 거둔 영혼들이 수신불명의 우편물처럼 날라 다닌다 우습도록 빛나던 한때의 열정은 고요한 지평선 너머 상식(常識)의 철책을 무너뜨리고, 몇몇 살아남은 추억들은 그리움의 성(城)을 쌓는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 불꽃 같은 가슴이 눈 부시다 검은 우주 가득한 성좌(星座) 간의 굶주린 감동은 둥근 천정(天井)의 관용이다 그 징표(徵表)를 머리에 이고 있는 당신의 비밀은 아름다운 모자이다 그 앞에선 분칠한 세상의 무도회(舞蹈會)도 초라한 수수께끼이다 어긋난 삶, 그리고 간단(間斷)없는 공포를 이미 체득하였으므로 결심하는 당신의 가슴은 청초하고 편안하다 그 가슴은 간혹 방긋 웃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애정으로 미소하는 하늘을 품었다 얼빠져 내다보는 시간은 이제 멈추고, 오랜 불안의 체념 속에 온통 무거운 것들로 장식된 절망이 세월의 어두운 책(冊)장 사이로 접혀간다 부풀어 오른 당신의 촉수(觸手)는 흠씬 물먹어 솟아오른 콩나물이다 향기를 내어모는 영혼이 무의식(無意識)의 잡초를 딛고 음악처럼 울려퍼진다 비로소 내 안에서 의식을 갖고 알기 시작하는 당신은 이제부터 나와 나란히 가려는 맑디 맑은 현실이다 그 무엇보다, 또렷한 당신의 얼굴은 노래 부르며 씨 뿌리는 봄의 희열이다 어디선가 흘러오는 푸른 물결을 뚫고 뛰는 고기가 번쩍한다 그 사이 부드러운 입술로 다가 온 당신의 입맞춤이 불꽃보다 뜨거워, 미소짓는 나의 부끄러움이 장님처럼 길을 더듬는다 눈부시도록 환하게 열린 하늘에 당신은 언제나 있고, 그래서 당신은 내가 아무 때나 죽어도 좋을 이유이다 - 안희선 <시작 Memo> 성경의 시편 51편을 읽다가, 신神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 보니... 인간이라는 이기적 존재의 유한有限함 속에서 그 같은 무한無限함의 신성神性이 깃든다는 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로 여겨진다. 결국, 신神은 [인간영혼의 목마름]이 만들어 낸 기대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내가 나로 부터 벗어난, 타자(他者 = 神)로의 형이상학은 지금까지는 철저한 절망이었다. 어찌보면, 낯선 곳으로 초월하는 일은 나에겐 언제나 두렵고 생소한 일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버티어 주던 육신과 정신의 에너지가 이제 그 한계에 도달해서일까. 나도 남들처럼 그 무엇엔가 기대고 싶음은. 문득, 나의 모든 절망을 희망으로 환치하고 싶은 날... (만약에 신神이 정말 있다면, 참으로 염치 없지만) 내 비천한 삶에도, 진실로 아무 조건없는 사랑이 깃들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Forever
댓글목록
이재현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시인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참으로 좋은 詩 감사히 감상해 봅니다
늘 건안 하시길 바랍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이게 얼마만입니까
기억해 주시고, 졸시에 머물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게 참, 질긴 것이어서
이때껏 죽지 않고 있으니
반가운 시인님께 인사드릴 수도 있네요
늘 건안하시고 건필하시길
먼 곳에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