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걸 믿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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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걸 믿지 않지만
보슬비 내리고 말갛게 젖은 하늘에
유년의 기억이 무지개로 걸리면
그 너머 아슴히 환해지는 얼굴을 본다
알알이 타는 꿈과 함께
입가에 번져오는 미소,
고와라
고향 여울진 그리움과 풀잎 같은 파릇한 것들
그런 것들이 진정 아름다워라
새벽숲의 맑은 내음, 피톤치드 향 같은,
싱그러움이 내 안에서 고요한 호흡이 될 때
세상살이 사나운 내 얼굴에도
아주 뜻밖에, 아주 뜻밖에,
오랜 잠 속에서 눈을 뜨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곱게 피어 오른다
잠깐동안의 현기증이었지만
결코 싫지 않았던,
어지럽지 않았던, 아주 오래 전으로
세월의 낡은 계단을 쿵쿵 내려서면
그곳에서 맑게 웃는 아이가
그 아이가, 나였던 적으로 서있다
아무도 그걸 믿지 않지만,
심지어 나까지도
- 안희선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잠시 들렸다 갑니다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마로양님의 댓글

어느 시인은 추억을 살해하고 싶다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그 추억은 머리맡 서랍장에 두고 늘 꺼내보고 싶은 그리움이더군요
수박향이 나는 냇가에서 징검새우를 잡던 날들
이때쯤이면 청보리를 베어다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보리서리를 해 먹던 날들
그 푸른 날들은 아무리 쥐어도 흘러내리는 물같은 것 같습니다
안희선 시인님 시를 읽으며 그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속으로 들어가봅니다
그날들은 가난했고
그날들은 단조로운 사람으로 산 것 같지만 지금생각하면 얼마아 풍요로웠고 얼마나 감동이였는지요
고향집 그 대청마루에 아직도 어머니의 목청이 쩡쩡이 들린듯합니다
시인님의 시편을 읽고 그리운 동화 한편을 보고 갑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오늘 날은 사람이 지닌 고유의 품격이나 자질보다는
획일화 되고 상품화 된 인격이 요구되고.
실제로, 삭막하고 거친 삶에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규격화 . 기계화. 상품화가 된
이질적인 모습에 문득 지금의 자기 자신이
낯설어지기도 해요
때문에 소위, 시를 쓴다는 일이
뭔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지고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때로는 '시를 쓴다는 게 부질없는 짓은 아닐까' 라고
회의 懷疑도 해보지만
그래도, '맑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소환하는 일에
시만한 게 있을까' 도 생각해 보는 새벽의 시간입니다
우리들이 벗어날 수 없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詩가
<명암과 곡절 등이 교차되는, 저 사연 많은 生>과
관련있다는 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듯...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아무도 그걸 믿지 않지만 (웃음)
부족한 글인데
머물러 주신 두무지 시인님,
마로양 시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