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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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 있다 / 유상록
앞마당 산딸나무 서 있다
수줍은 꽃잎 아닌 꽃잎
붉은빛 입술 둘러싼 우윳빛 쟁반
오뉴월 노란 염주 받쳐 든다
뒤뜰 백일홍 동갑내기 동무했을 때는
한 줌 이파리 무거워 양팔 축 늘어졌는데
앞대문 들락날락 삼십여 년 함께 살아온
문짝 높이 키에 떡 벌어진 풍채
집앞 정원수로 안성맞춤이다
뒷마당 개울물 경사진 내리길 계단 따라
쿠누스, 사토미, 배다른 두 자매가 있었다
늘어진 가지 끝 마디마디 봄날 이슬 달려 햇살 떠오르면
다 머금지 못한 커피 향 고스란히 삼켜버린다
청둥오리 개울물 나돌고 흰 두루미 느린 한 발짝 내딛는
한여름 하얀 햇살 내리던 이른 아침
의아한 눈길이 한 빈자리에 머물고
온데간데없는 쿠누스 모습
놀라 내친 발걸음, 눈물 두 눈에 가득 고였다
비탈 언덕 위 동갑내기 백일홍 빈자리 채웠다
진분홍 핏덩어리 작은 수많은 색종이 마구 구겨 댄
서너 달 넘는 백일 피고 지는 백일홍이다
대 혁명이다. 십여 년 지나 우거진 넝쿨 웃자란 잡목
키 작은 것들 긴 철심 박은 회초리 쳐대고
다섯 넘는 팔뚝 모두 잘라내어
멋대로 자란 이름도 없는 놈들
톱 이빨 밑동 쳐내고 뿌리째 파내 버린다
창문 활짝 열어젖히니 개구리 울던 옛 산천이다
동쪽 집 대문 앞 풀밭 가운데 선 사토미
길 떠날 수 없지만 홀로 서고서야 할 때이다
하나만이 설 수 있는 곳이다
서두르고 과격하지 않으며
스스로 한쪽 팔 잘라낼 줄 알고
꼿꼿이 처마 낮게 서 있어
네댓 개 팔 열어 대문으로 인도할 줄 안다
그 자리 그 모양 계절에 순응하며 수 세기 지켜온 진리
장마 가뭄 한파 구진 날 다 지나가는 길
일용할 공기 물 다 주어진다는 것도 안다
빗줄기 내리는 긴 밤 홀로 외로워할 줄 안다
혼자 서 있다
댓글목록
유상록님의 댓글

앞의 "산딸나무" 다시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앞의 산문 형식을 간추려보니(?) 조금 수월합니다
생각하는것은 여기에 인간의(?) 삶과 현실을 넣고 비유를 하며
같은 주제와 대상으로 또 다시 써보고 싶은데....
아직 공부 하고 있습니다.
유상록님의 댓글

제목을 바꾸었고, 중간 두 단락을 좀더 개인적인 진술로 바꾸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