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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책벌레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817회 작성일 17-05-27 20:04

본문


  마실
  ―밥, 차, 그리고 술


  정민기



  저녁 마실 겸
  새로 생긴 식당 '마실'에 갔습니다
  식당이지만, 한 권의 책처럼
  이름 아래 '밥, 차, 그리고 술'이라는
  부제목이 있습니다
  식당 문도 미는 문이 아니라
  진짜 책처럼 앞으로 당기는 문이었습니다
  책도 밀 수 없이 앞으로 펼쳐서 읽으니까요

  새로 생긴 상냥한 웃음이 있었습니다
  '밥, 차, 그리고 술'이지만 차는 건너뛰고
  밥 메뉴 중에 맨 위에 있는 콩나물비빔밥을 먹습니다
  그 아래는 콩나물국밥, 계란라면, 돈가스, 어린이 돈가스, 샌드위치, 파스타
  차 메뉴는 건너뛰고
  술 메뉴의 맨 위에 있는 맥주를 마십니다

  맥주잔을 기울이다가
  물잔을 기울이는
  앞 테이블 여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는 술이 아닌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초승달인 듯
  맥주잔을 기울였습니다 미끄럼틀처럼
  달빛이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집니다
  술 때문일까요? 가슴이 쓰라립니다
  그 여자가 마시는 물도 그 여자의 목구멍을
  미끄럼틀처럼 타고 미끄러지겠지요

  남은 콩나물비빔밥을 마저 먹고
  나보다 늦게 온 그 여자를 그대로 두고
  다 읽은 마실이라는 책의 맨 앞장으로 가서
  앞표지를 열고 나오니
  저녁이 소리도 없이 닫히고 있었습니다
  마실이라는 책은 뒤표지가 없어
  앞표지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천0

댓글목록

추영탑님의 댓글

profile_image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을 읽다보니 뭐든 맨 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겠습니다. ㅎㅎ

마실 나와서 마실에서 물 미끄럼과
술 미끄럼이 눈 한 번 마주기는 걸로 
끝내기는
너무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ㅎㅎ *^^

책벌레09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책벌레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아쉽게~ 몇 시간 전에 아쉽게 돌아왔던
시 속 화자의 이야기가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아는 어르신과 함께 새로 생긴 식당 '마실'에서
저녁 먹고 왔습니다.
술은 역시 밥이랑 같이 마셔야 하지요.
그냥 술만 마시면 몸 버립니다.
문운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두무지님의 댓글

profile_image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실에 얽힌 식당과
사연들 정겨움이 묻어 납니다.
하루의 일상이 아름답게 무르익는 풍경 입니다.
건안과 햄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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