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을 헤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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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을 헤매다가
정민기
봄밤을 헤매다가
덜컥, 여름 아침을 만났네
그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빈 지붕만
하늘에서 비가 오면 발을 구르기 일쑤다
나의 사랑은 저곳에 있지 않다
섬마을 초등학교에 해당화가 필 때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백열등은 가로등보다 일찍 꺼진다
가로등은 얼차려처럼 자동이다
새벽 어스름 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변기통에 생각하는 상처럼 앉아 있다가
시원하게 볼 일을 다 하고 나왔다 나비가 날아오더니,
바로 앞에서 피티체조를 한다
만나자마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셀프로 마셨다
내가 먼저 뽑아 마셨어야 했는데, 그가 뽑고 나서
내가 뽑자 종이컵이 나오지 않고
'컵 없음'에 눈병 걸린 것처럼 불이 들어와 있다
드디어 보충된 종이컵, 잠시 한눈을 팔고
커피 한 잔을 뽑으니 이번에는 '물 없음'에 토끼 눈빛이 들어왔다
어차피 오늘 커피는 물 건너갔구나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아가씨* 만나러 갔구나
갑자기 경적이 울린다 길을 건너다가 딴 생각하다 보니
다리 위에서 로드킬 당해 내장이 다 터진 길고양이를 치웠다
* 독일 민요 「로렐라이 언덕」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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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힐링님의 댓글

현실에서 복잡한 일상의 단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묘사해 놓은 솜씨는 그만큼 투영함을 지니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삶의 이면이자 정면에서 부딪쳐오는 파편들을
시로 바꿔내어 싱그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책벌레09 시인님!
책벌레09님의 댓글의 댓글

따스한 마음입니다.
문운과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