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鶴)-고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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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鶴)
이 명 주
무성히도 녹음이 혼불처럼
산허리를 휘감아 굽이치던 날
유독, 황소에 고집스러운 눈으로
“신기루”를 찾던 사람이 떠나갔다
넋 나간 운명에 질시처럼,
뜨거운 봄의 피가 도로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광화문
아지랑이가 아련하게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도심 한복판에 무릎 굻은 한 젊은 여인에 이상이,
꿈꾸어 왔던 것들이 너무 숭고하여 메마른 산과 거친 들녘은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렸던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안에 상록수 한 그루
충치 가득한 산어귀와 구더기 끓는 들녘에
기타를 치며 홀로 서 있다, 무너지던 날
괴리 안에 공존하던 이마 식은 살모사는
백색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진 유적지를 떠나려는 자
스스로의 자태가 유일한 허물이었던지
고독한 화살을 걸쳐 입고
천수(天水)의 강 위에서 멈칫하였다,
공존의 그늘을 벗어나면 이상이 있을까
황천길 언덕에서도 아집스럽게 초록으로 남아
기어이 넘지 못한 언덕 아래 구천을 떠돌다
도도한 강 위에 둥지 내린 학(鶴) 한 마리
이제 무엇으로 이상을 벗 삼아 만날까
우리는 묶였고 그는 떠났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혼령으로 다시 만나리라
멍에 쓴 사슴 피 흘리는 두루미 한 마리 구슬피 울어
회색 하늘의 사무친 자리, 비를 삼킨 마른천둥이 울부짖는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넋으로나마 다시 만나리!
천둥의 부름에 답하며 악취가 진동하여
강은 저주의 피 녹조로 물들어 가고
정의라던지 상식 그리고 이상 따위는
결코 아랑곳하지 않는 뒤주 안에 썩어가는
그 강의 운명이었다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 가사를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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