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未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미완(未完) /
시엘06
저녁마다 달을 따러 간다는 사내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날이 거듭될수록 사내 짓거리가 은근히 궁금해서,
어느 날 대문 나서는 자를 붙잡고 수확이 좀 있는지
물었다 사내는 그저 배시시 웃으며
달이 걸린 고개를 넘어갔다
새벽 별을 등지고 돌아오는 그자의 표정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폐가 뒤안처럼 어수선했다
낮에는 꽃대가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사내가 조그만 정원을 끌어안고
배앓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생겼다
그나마 규칙적인 그의 밤 외출도 이제 뚝 끊어졌다
아무래도 달을 훔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가 보다
보름이 훨씬 넘게 두문불출해서 마을 몇 사람과 함께 찾아가 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니 사내는 보이지 않고 몇 가지 살림살이만
널려있었다 산을 넘어간 것인지 강을 건너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마침 낮달이 보였는데 그 낮달이 갑자기 가슴에 쿡 박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댓글목록
소낭그님의 댓글

오~ 이 글 완조니 재밌네요.
은은한 달빛이 때론 따뜻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몰랑몰랑하고 야들야들한 기분이 듭니다.
달을 딴다는 것이 휘영청 빛나는 달 같은 시를 지으려 애쓴다는
느낌과도 통하고요.
어찌보면 시엘르님은 허공과 하늘에 대해서는 고수다 그런 느낌입니다.
낮달이 가슴에 푸학~! 쌔리
시엘06님의 댓글의 댓글

ㅎㅎ 쥬뗌므!
달과 관련 몇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데 일종의 탐색전인 셈이죠.
시 쓰기 은유로 보아주시니 오히려 신선한 자극이 되네요.
부끄러운 글을 사랑해주시니, 저 또한 쁠레지 다 므흐!
화창한 날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활연님의 댓글

동화적 상상력을 구현한 송찬호보다 한 수 위다.
그러니까 하늘이다 싶네요.
인간은 모든 사물을 의인화하는 동물이다, 는 생각이 드는데
달, 달은 기막힌 상징이고, 알 수 없는 은유지요.
그것을 능청스럽게 르뽀하는 솜씨는 하늘님만 가능한 필법.
독특한 언술을 배우려면 말술 사야겠습니다.
사월을 "어떻게든 이별"(류근 시집) 해야겠습니다.
므찐 날 지으십시오.
시엘06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을 노래하고 싶지만 '하늘'은 꿀먹은 벙어리입니다.
접근할수록 하늘은 영원히 높아지기만 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겠지요.
노자가 말했나요? 도를 말하면 그건 더 이상 도가 아니라고 하듯이.
문장은 빈 굴 껍데기처럼 쌓이기만 합니다.
활연님이랑 말술 한번 묵어야 정신이 들는지. ㅎㅎ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화창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쇄사님의 댓글

그 사내는
달을 따러 간 것이 아니라
공중에 사다리를 놓고
기어 올라갔나 봅니다
낮달에 그을린 흔적이 없는 걸 보니
아직도 가는 중인 것도 같고...
절실하지도 치열하지도 않아
그저 화살이나 쏘는데
과녁이 움직이니 영 글렀다 싶습니다. 저는,
시엘06님의 댓글의 댓글

아닙니다. 움직이는 과녁을 잡으실테니 대박나지요. ^^
지루하고, 하지만 매일 평범한 소중함같이 쏘다보면
과녁인들 당해내겠습니까.
늘 제 글에 또 한번의 상상력을 발동시켜주시니
뉘신지 보통이 아니올시다.
쇄사님~~ 좋은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