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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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山行) / 안희선
최후의 마을을 지나, 오르는 산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뼈처럼 숨어있는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빽빽하니 들어찼다
공기를 흔드는 서늘한 숲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 서걱이는 풀섶
하늘엔 구름이 엉킬 징조가 보이지 않았지만
서서히 한낮의 흔적은 지워지고 있었고,
비스듬한 햇살들은 갈 곳을 몰라
추억으로 쏠리는 발걸음마다 뽀얗게 묻어났다
오르는 산은 자꾸만 자꾸만 높아지고
피로의 숨결이 잠시 후에 고함지를 것을
이 잠잠한 공간은 침묵처럼 알고 있다
아, 하루는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주름진 풍경 사이로 황혼이 깃든다
그렇게 또 나른한 모습으로,
목덜미 젖히는 태양
저 멀리 계곡의 끝에서
끊임없이 똑딱이는 벽시계 하나,
숲에 둥지를 튼 뻐꾸기를 닮았다
나를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발가벗은 바위들만 의젓해,
완만한 바람에도 조금씩 나의 등이 밀린다
이제 곧 비탈진 숲을 가로질러
알 수 없는 계곡의 저쪽으로 가야 한다
그동안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또 어떤
다른 내용으로 읽혀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산을 재촉하는 저녁빛이 잔뜩 부풀어 가혹했지만
멀리 아득한 천둥 소리에 이따금 뒤돌아 보며,
또 다시 멀어지는 봉우리를 향해
걸어갈 뿐
주위엔
아무도 없다
댓글목록
육손님의 댓글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문체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같은 방에 가누어 두고 같은 시계들을 걸어 두고
헛 된 시간을 보내라 강요 할 자격은 없습니다.
안희선 시인님의 시를 보면 참으로 연민을 느낍니다.
시가 지금까지 창작하신 시들을 읽어 볼 때 같은 향기의 시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버릴 시들이 산더미 같아 위로를 드립니다.
작가가 즐거워 하는 일은 독자가 즐거워 하는 일이지만
즐거움이 사라진 독자를 위해서 작가는 노력 해야 합니다.
쉽게 독자를 위로 하려 했다가는 다시는 찾지 않습니다.
.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인간의 제 행위가 그러하듯 글을 쓰는 행위라 해서 - 제글 같은 건 차마 시라 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 흐름이 늘 고여있으란 법은 없겠지요
오히려, 그와 정반대라 할까..
그건 그렇고
시라는 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십계명이 아닌 다음에야,
시 또는 시론에 관한 절대자란 존재할 수 없는 것
- 따라서,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시는 단 한 편도 없다는 게 제 생각
그런 의미에서 구태의연한 낡은 글이나마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한다는
더욱이, 언급하시는 글의 향기 같은 건
평소에 생각도 안 해보았을 뿐이라서
애먼 불특정 다수의 님들께 제 조악한 글들이
(육손님의 고언 苦言처럼) 공해가 되었다면
죄송한 마음
한편, 요즘 올리는 글들은
그간의 허접한 글들을
추리는 과정이어서 (추린다기보다 폐기처분하는)
제 글에서 그 무슨 염증까지나
느끼실 건 없겠습니다
어쨌거나, 바쁘신 중에도 한 관심 부어주시니
많이 고맙네요
육손님의 주옥 같은 시편들도
만나면 하는 기대, 또한
이 자리에 함께 놓습니다
부디 건필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육손님의 댓글의 댓글

감히 제가 이시인님의 시편을 평가 하였지만 저같은 사이비에 속지 마시고
시인님의 시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남은 것은 못다한 시들을 보내는 일이지요.
함부로 평가해서 죄송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독자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는 말씀에..
제 졸시는 워낙, 읽으시는 분들이 없기로 한 가닥하기에
- 일차적으로는 글이 시로서 영양가가 없음이겠고,
이차적으로는 (지금은) 일반인들은 물론, 시인들도 시를 안 읽는 풍토라서
아무튼, 타인 혹은 독자가 무어라 하건 간에
또.. 제 졸글을 읽던 말던 하건 간에
저의 경우, 글을 쓰는 건 일차적으로
저 자신의 무료한 生을 메꾸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할까요 - 할 줄 아는 게 그 짓꺼리밖에 없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저라는 물건은 시인 축에도 못끼는,
아주 형편없는 글쟁이라 하겠습니다
귀한 말씀으로 거듭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육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