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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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앨범
다락에서 먼지 뒤집어 쓰고 기억을 갈무리하고 있는 앨범
빛바랜 표면에 늙어버린 순간들이 순한 양처럼 고요를 움크리고 있다
바빠서 잊고 사는 동안 흑백사진도 외로워서인지 누렇게 변색되어버렸다
지우고 싶었거나, 기억하고 싶었던 생의 문장들이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증거가 되어
앨범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바쁘게 또는 느리게 걸어 나온다
철없는 사춘기 시절 짝사랑 했던 설렘을 생각하면서
기억 속 시간 여행이란 짝사랑 숨결처럼 가슴을 먼저 두드렸지
세상의 냉정함에 얼어버렸던 가슴에 온기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앨범 속 봄여름 가을 겨울이 스르륵 지나가는 사이
한 장 한 장의 기억들이 말하고 싶어 했던 즐거움이
정지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 자리에 대신해줄 수 없는 사진 속 그림이
슬퍼했던 눈물에 녹아 스르륵 흘러내린다
세상 어디엔가 살아 있을 모습을 환생시키기 위해
세상 어디엔가 살아 있을 기쁨을 환생시키기 위해
나는 또 한 장의 앨범을 넘긴다
덮여있던 먼지들의 게으름을 다 보내버리고 난 뒤
맑은 기억들이 그 앨범 곁을 지켜 줄 것이다, 나는 지금
시간여행자처럼 나 자신을 먼 미래로 나의 과거를 데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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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09님의 댓글

표현의 깊이, 머물다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