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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28회 작성일 17-02-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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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두루마기에 말린 청춘


아무르박



구 남매의 맏이였던 장인은
어느 날 선언을 했다
자영업을 했던 사람의 정년퇴직은 그런 것이었다

장인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사람처럼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1급 자격증을 따는 날
장인은 못 마시는 술 한잔 비워내고
소박한 꿈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실망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내 가난한 동네 안동 시골 마을은
허리띠 졸라매고 살기도 바빴네
차비 한 푼 들고 서울 상경해서
산동네 판잣집에 층층시하 동생 넷 출가시키고
딸 여섯 대학 가르쳤다
고등학교뿐 배움이 한스러워
남은 생은 아이들에게 한자 공부 가리키고 싶었네

동사무소에 개설한다는 무료한자 교실
치맛바람 난 여인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가난을 탓해서 무엇하랴
삶은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당찬 사람이었는데

처가 구석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쌓아놓은 듯
한지와 종이 더미가 늘어갔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예대전에 입상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날은 딸 여섯에게
작은 포장 상자를 하나씩 건넸다
깨알과 같은 세 붓으로 부채에 쓴 반야심경이었다

밥을 먹으면 밥상이요
술을 마시면 술상이요
아내와 차를 마시면 찻상이 되는
연꽃무늬 앉은뱅이 팔곽상을 좋아한다
침침한 눈에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
한지를 오려 한 땀 한 땀 붙였을 장인의 한지공예
나는 유독 그 상을 받으면
장인어른의 말씀처럼 강직하게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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