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기억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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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기억 속에
정민기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했나
하나 나는 떼어 놓을 당상조차 없다
어차피 상처받으면서 자랐기에
더는 상처받을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 내 마음이 달라졌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어두운 동굴 속에 태양이 솟아오른 것이다
별나라라도 갔다 왔는지, 빈 숲은 여전히 조용하다
법칙은 때론 숲에서도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울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우체국에서 그리운 너에게 편지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산으로 가는 배를 타야만 했는데 사공이 많은 배가 없다
뭔가 지워야 할 것이라도 있는지, 채찍질 속에 폭설이 내린다
눈은 한없이 내리는데 이랴, 이랴, 서두르고 있다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그녀가 공원에 나와 벤치에 앉았다
앞서 그 자리에 내가 먼저 앉아 따뜻한 엉덩이로 눈을 녹이고 있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사랑이 있어서 더욱 간절한 것인가 또다시 눈이 내린다
그녀의 꽃말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깊이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어느 보리밭에서 숨바꼭질하는 꿈을 꾸고 있다
편지를 쓸까? 상처를 받을까? 나는 지금 독백 중이다
길을 걷다가 문득 차가운 마음 같은 눈이 내리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새 한 마리가 허공에 징검다리를 놓을 때 그 뒤를 건너오던 그녀가
다 건너지 못하고 사랑의 하늘색 씨앗을 떨구기만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철없이 그녀와 스테이크를 먹거나
스파게티를 먹는 생각만 오늘도 여전히 기억 속에 쇼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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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책벌레09님의 댓글

♬ 고백하는 말 - 진원
https://www.youtube.com/watch?v=p0-Wy_CTi-I
김태운.님의 댓글

젊은 시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갑니다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떠올리며...
그 씨앗 빨리 뿌리소
책벌레09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땅에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밤하늘에 씨앗을 뿌리고 말았습니다.
반짝반짝 싹이 났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