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쳐 보니 본래 깨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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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쳐 보니 본래 깨쳐 있었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진공眞空으로 이루어진 보림선방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녀도 늘 진공
육신은 부처를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광장
*
**
* 진공眞空 / 부처의 본체本體.
*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이 말고도 수많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름에 속지 마십시오.
이름은 달라도 본체本體(본바탕)가
진공인 부처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이고,
영원불멸永遠不滅이므로 그렇습니다.
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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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곳, 모든 일에 항상 부처가 존재한다 /
불을 손도 안 되고 꺼버리고,
영원히 타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 불을 밝혔으니
언제 어디서나 니르바나
*
불/ 인간은 누구나
과거, 현재, 미래(삼세三世)와
번뇌 망상(마음 행위, 알음알이)에 사로잡혀
활활 불타고 있으므로 불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불/ 뒤에 등장한 불은
'모든 본래 성품(부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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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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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탄무誕无는 무문관無門關을 설說한다.
위에 선시禪詩에서 타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는
이러한 선문禪門이(깨침의 언어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말(선문禪門)은 선가 어록이나 선사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언어입니다.
/타지도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와 번뇌 망상에 불타지 않음을 뜻합니다.
/젖지도 않는다./
절대 오염될 수 없음으로 물들지 않음을 뜻합니다.
공의 본래 모습으로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번뇌에 불타고,
마구 섞이기를 좋아해 오염되고,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개념과 관념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 행위이지,
인간의 본래 성품은 번뇌 망상에 불타지도 않고, 오염에 물들지도 않습니다.
마음은 한순간도 잠잠할 때가 없습니다.
선가 어록이나
선사들이 이러한 언어를 사용했을 때는 어떻게 사용했는가 하면은
주어(인간의 본래 성품, 부처)를 생략하고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아, 목적어도 생략되었군요.
/ 타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부처의 본체를 겨냥해서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주어만 생략할 때도 있고,
주어와 목적어를 동시에 생략하고 선문으로 말을 할 때도 많습니다.
깨침이 없으면 주어와 목적어가 동시에 생략된 선문은
개부X 터지는 무슨 뚱딴지 같은 말로 들릴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성품에 상징(의미)을 두고 말을 할 때
도마복음서에서도 언어를 이런 식으로 사용한 선문이 대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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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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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마음을 비울 수 없다/
마음을 비웠다는 그 마음도 마음이요
마음을 끊었다는 그 마음도 마음이요
마음을 씻었다는 그 마음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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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웠다,
마음을 끊었다,
마음을 씻었다,
마음이 없다는,
이러한 말을 한다면
이 말은 아직 계속 많은 것을 들고 있음이다.
마음은 마음으로 비워낼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마음(의식)은 마음이 하는 행위를
/알아차리고 지켜봐야 할 대상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조몰락거리지 말고
그냥 냅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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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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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와 한 문중門中을 이루었다 /
자궁으로 숨어들기 전부터 이미 있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므로
선택받은 자,
나에게 발견되고야 말았다
철저히 평범하다
완전한 부재 상태
이것이 부처가 존재하는 방식,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