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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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2,241회 작성일 15-07-10 07:46본문
1.
창가 볕 한움큼을 책상에 붙들어 놓고 백지 한장 올려놓는다.
두개골 사이에 걸린 끈적한 오감의 기억들, 오래된 거미줄같은
머릿 속에 온종일 실잠자리가 날아다닌다. 신기루 속 깊은 기억
의 샘에 날아드는 실잠자리 날개짓, 윙윙 환청이 들린다. 헝클
어진 뇌 속에 환영같은 둥근 파문이 퍼진다. 백지 위로 앞뒤가
바뀐 심그렁한 얼굴이 그려진다. 거꾸로 보이는 세상으로 거침
없이 흑과 백으로 색을 덧칠한다. 무엇을 그리려 하는가? 나는
왜 이리도 아프고 속이 아려서 하얀 여백만 바라보고 있는가?
2.
알듯 말듯한 부호가 옆으로, 위 아래로 빼곡히 그려진다. 원근
을 살려 심도를 맞추고 황금분할의 묘를 부려 산을 그리고 뭉
게구름과 실개울을, 여름나무와 여름꽃을 그려 넣는다. 벙어리
참새가 날고 향기 모를 참나리꽃과 독 없는 능소화가 몽실몽실
피어난다. 백지 구석에 흔적으로 걸린 두발자국. 그리고 하얀
여백 끝에 뜻 모를 강박증이 털석 주저 앉는다.
3.
백지 위에 꿈틀대는
어스름 새벽 안개와 여름 꽃들
오늘을 기억하는 바람
명암으로 엇갈린 초록 산그리메
산들은 이미 동침한 동색
눈 멀게 한다는 능소화에 대한 소문
독기 없다는 전언에도 등 돌린 외면
4.
이젠 벗어나고 싶다. 하얀 여백에서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강
박증, 백지에서 부르르 발기하는 부호와 기호들이 책상을 가
로질러 여름 잎새 가득한 길목으로 나선다. 나에겐 네게 보
여줄 어떤 부호도, 손쉽게 전해 줄 기호도 없다. 가슴열어
선홍빛 심장을 꺼내서야 고개 끄덕일 숨은그림 찾기같은 이
야기들, 한때 어질어질 걸어온 길과 시시때때 숨 헐떡이며
걸어가야 할 길들이 눈 앞에 하얀 여백처럼 놓여진다. 내색없
는 강박증이 머릿 속 기생하는 왕거미처럼 여백을 갉아먹고
있다. 왜곡과 변곡으로 점철된 그림은 곧 잊혀지고 눈에서
멀기만하니 이미 채색된 그림을 하얀색으로 지워내고 있다.
내 그림 속 해거름녘 노을이 아직 하얗다.
글쓴이 : 박 정 우
댓글목록
azsz님의 댓글
azs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때론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지라는 것이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서
추천합니다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머물러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향긋한 풀내음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활공님의 댓글
활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대인들의 강박증은 못말리는 수준이지요
마치 무엇에 쫓기듯이 시간과 전쟁을
하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머물러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늘 한결 같으시니 부럽습니다 시인님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활공님의 시 덕분에 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보내시기 바랍니다.
현탁님의 댓글
현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고 보니 저도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늘 백지 위에서 불안한 저도.....
몇 번의 백지가 울어야 한편이 될지 모를 오늘도...
공감 놓고 갑니다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이든 화가이든 늘 백지 위에 종종거리는 생각을
가지런히 담으려 애를 쓰겠죠. 날이 갑짜기 더워집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주저흔님의 댓글
주저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감상했습니다,,,박정우 시인님,,옥상 바로 밑에서 지내다 보니,,더위에 강박증이
생겼습니다,,,복사열이,,에어콘이,,무용지물,,건강하십시요.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시 보고 읽고 싶습니다.
시간이 허락되시면 좋은 시 자주 올려주세요.
복잡한 세상, 시원한 시가 기대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