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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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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55회 작성일 16-07-20 19:34

본문

산딸기

 

 

어쩌면 저 잔을 가득 채운 

붉은 향과 나는 꽤 오랜

인연(因緣)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前生)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거나

내 슬픔을 꾹꾹 눌러 어딘가 깊숙이 간직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통 붉은 슬픔으로

저렇게 물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드는 낫으로 툭툭 쳐서

이슬이며

풀씨며

온갖 이파리들과 함께

까만 장화를 벗으며 우리 앞에 내려 놓았던

옛날의 그 풀내 나던 산딸기가

여기까지 날 쫓아 온 것이 틀림 없다

마당 귀퉁이에서 우리 삼형제에게 붙잡혀

빨간 열매를 쏙쏙 우리에게 뺏겼던 그놈이

질긴 목숨으로 여기까지 날 쫓아와

내 잔을 저렇게 마주하고 있는 게 틀림 없다

그래서 저 붉은 잔에는

지금의 나를 닮은 젊은 아버지가

이슬이며

풀씨며

푸르스름하던 신새벽을 툭툭 끊어내며

우리 곁에 슬픔들이 얼씬도 할 수 없도록

이것저것 받아 두었던 각서들의 붉은 인주가

오랜 세월 저렇게 내려 앉은 것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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