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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움은 앞으로 백 년만 참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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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헤엄치는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691회 작성일 17-04-03 08:04

본문

사회초년생 불과 4년 차지만
여태 한 직장에 익숙한 동선을 살다 보니
괜찮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더라
그래도 당신이 좋아한다 말해주면 덜컥 겁이 난다

꾸준히 체격을 유지하고
종종 트집 잡힐지언정 고집스레 술자릴 빠지고
일정한 중저음으로 말하고
로봇 같은 가르마를 타고
패션 패턴을 최소한 것은
원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선데
당신이 좋아한다 말해주면 덜컥 겁이 난다

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난 속으론 그럼요 라고 말하지만 그저 멋쩍게 웃어야 해요
사탕 드실래요?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야 해요
갑자기 촉촉한 향수를 뿌려주셔도
코가 냉큼 반응하지만 아껴 쓰시라고 말해야 해요

만약 그 날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부스럭 까준 사탕을 날름 받아먹었다면
향수가 어떤지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면
분장이 들킬 것만 같아서
숨겨왔던 눈알이 흉측하게 무너져 내린 걸 의식했죠
괜히 가시방석에 앉은 듯 굴고
애꿎은 시계만 만지작거리며 초점을 피했어요

분명 당신에게 정체가 들통났을 거예요, 제게는
눈물 마를 날은 살아서 느끼지 못할
사별을 지켜봤던 눈이 있는데
그 사건 후부턴 왜 죽음이 먼저 스친 지
소중한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시키는 걸 뿌리치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것이고
오누이는 어머니가 될 것이고
그렇게 또 서로 멀어질 훗날조차 두려워
지금 감당해야 할 인연만으로도 마음이 좁은데
어떻게 사랑을 하죠

사회 속 여러 현상이 속수무책 악한 만큼
당신이 느낄 절망과 슬픔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는 자체가 고통일 거라
난 소중한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외로움을 사육하는 게 나아
혼자일 땐 손등 악물고 갈비를 분지르면서 독하게 버틸 수 있지만
숨 막히게 아픈 뉴스 속보가 쇄도하고
소중한 누군가 함께인 세상이라면
난 미쳐 불안해 견딜 수 없어요

당신들이 좋아한다 말해주면 덜컥 겁이 났습니다
결코 당신이 싫은 게 아니라고
에둘러 말하려 평소 생각해둔 대사가
한두 살 세월 따라 겁쟁이 신념을 굳힌다
 
왜 죽음이 먼저 스친 지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은 살아서 느끼지 못하는가
남이 겉보기엔 모를 이 못난 습성을 내가 너무도 잘 안 이상 어떻게 사랑을 하죠
아무 일 없는 척 슬픈 티 안 나게 우생학을 시인하고
나의 유전은 천천히 씨를 말려야 해요, 철저히...

악몽 속에서 난 악마의 뿔이 자라죠
기관지엔 가시가 돋죠
호흡이 화염처럼 뜨겁고 
샘이란 샘에서 새빨간 피가 안 멈춰요
머릿속에 절규가 끊이질 않아요
조금만 뻗어도 칼바람이 꽃을 찢고
내딛기만 하면 생물이 뼈로 녹아요
나는 괴물이 되기 싫었어요
저주받은 뿔 꺾으려 맨땅 부딪히면
다시 눈을 뜨죠, 현실의 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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