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 별곡 > 창작시의 향기

원추리 별곡

가을바람이 생각마다 밑줄을 그어줍니다

그리고 물음표를 달아 주었습니다

글로 된 문제는 다 지워버렸습니다

선 굵은 밑줄과 물음표가

가지마다 일렁입니다

가을바람은 결코 답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길 정도의 힘으로

정말 딱 그 정도의 힘만으로

세상과 즐거운 겨루기를 합니다

가을바람을 들인 나무에서

답을 찾은 나뭇잎들이 떨켜로부터

이륙을 준비합니다, 바위를 깨는 물처럼

바람은 잎들의 망설임을 그렇게 오래 깨었습니다

가을바람이 내게도 긴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묶고 있던 디지털 생각들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을을 닮은 큰 물음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귀띔을 해 줍니다

‘답은 답 밖에 있다!’

여름을 건너온 시간의 색들을 땅에

내어주는 가을 들풀 사이에서

얼굴이 주홍이 되도록 답을 찾던

원추리가 그 소리에 가을을 건너는 

바람에게 절을 합니다 바람이

원추리 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