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T 허연 가루가 사람들의 까까중머리에 투하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서캐 빈대가 보리고개 너머로 철수하고 남산 아래 들녘 한쪽에서 마을의 콜레라, 홍역, 천연두를 지푸라기 거적대기로 가리고 있던 '병막"에는 언젠가부터 풍채 좋고 잘 생긴 근로보국대 출신일 듯한 노총각의 옷들이 항복을 알리는 백기처럼 빨랫줄에 내걸리고 있었다.
독새풀잎 위로 겨울 햇살이 금방이라도 푸르게 미끄러져 병막의 방문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이 위태로웠던 병막으로 가는 좁은 논둑길에는 알록달록한 무당개구리가 헤엄을 치는 1급수 옹달샘이 있었다.
팻말에는 "묵는 물이니 손이나 발을 씻지마시오." 병마개 주인 백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그 노총각은 옹달샘물을 약으로, 병막을 약병을 막아놓는 병마개와 같은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강아지만한 아이가 저녁답 종일 풀을 뜯은 소를 몰고 싸릿대 울타리집으로 돌아올 즈음 전봇대만큼이나 길어진 그림자가 지탱하고 있던 위태로운 집 굴뚝에서 나오는 희뿌연 연기는 흰쌀 한알 없이 애벌 삶긴 보리를 두번 곱 삶아 먹는 보리밥처럼 풀기가 없었다.
얼어붙은 가난을 녹이기 위해 창백한 청솔가지가 푸른 불꽃을 피우면 매케하고 희뿌연 연기가 구멍난 내장에서 흘러나오는 오물처럼 구들장의 틈을 뚫고 방안에 가득찼고 천정에는 시커먼 먼지고드름이 자꾸 커져가고 있었다.
들기름 먹은 아랫목 돌가루 종이 장판은 검은 복막염처럼 온 방으로 전이 되고 따뜻한 온기에 간지러워진 서캐가 난닝구 바느질틈 사이에서 온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좋았던 시절의 큰 뒤주바닥은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의 보채는 소리로 심연처럼 깊고 어둡게 긁혀 생채기가 나고 그런 날이면 아이는 무우꽁보리밥을 먹었고 겨울밤은 대책없이 길기만 했다.
어둡고 긴 밤이 지나면 물자가 바닥난 전장처럼 희망없는 새벽이 외떨어진 초가를 덮쳐왔다.
윙윙거리는 찬바람 소리가 났던 구멍난 창호지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구멍이 나 있었고 체할 만큼 먹었을 리도 없었던 어머니는 늘 가슴이 아프시다며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치셨고 허기를 채우기 위한 물탄 막걸리에도 취하신 키 크신 아버지의 그림자는 늘 흔들리고 있었다.
소마굿간과 같은 지붕의 아래인 부엌바닥에는 늘 소의 배설물이 흐르고 있었고 마당에는 한지붕아래의 화장실에서 스며나온 빗물이 조금씩 고여있었다.
여섯 식구들이 입에 풀칠할 스무마지기 소작논은 마굿간의 소와 취한 아버지와 솜처럼 약한 어머니와 굶주린 어린 자식들이 농사를 짓기에는 바다처럼 넓었고 별이 지기 전 집을 나서고 별이 뜬 후에야 할당량을 다 못 채운 죄인처럼 어둠과 함께 숨어들었다.
망한 집이 모두 그렇듯, 할아버지 술값 대느라, 명이 짧았던 큰아들딸 공부시키느라, 삼촌 사업하느라 예전에 가진 땅을 모두 팔았던 부잣집에 때거리가 떨어져 보리쌀 몇되 빌리러 갔다 여늬 때와는 달리 거절당하고 돌아온 날 46 늦은 나이에 낳은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아이야. 다음에 내 젯상에는 쌀밥과 고기와 과일 대신에 지전을 올려주면 좋겠구나"
어머니의 그 슬픈 눈 속에는 세상을 향한 원망은 없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눈에서 자신에 대한 소망을 보았을 뿐이었다.
어린 뼈를 녹이는 듯한 고된 농사일을 그만두게 된 날은 14살 가을이 오는 날 체육시간에 갑자기 찾아왔다.
집에서 키운 콩나물을 팔기 위해 시장에서 쓰러지신 어머니의 열 손가락과 코 아래와 이마에 용하다는 함부로 찔러댄 김영감의 침으로는 한방울의 핏기조차 없이 메말라 마른 무우뿌리처럼 주름져 무기력하게 쳐져 있었던 어머니의 갸녀린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청개구리같은 불초자식이 마련한 젯상에는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여늬 젯상처럼 과일과 나물과 생선, 하얀 이팝이 올랐고 깊은 산 어머니 산소에는 올해도 노란 나뭇잎이 紙錢으로 깔렸다.
어머니가 가신 나이보다 더 되어서 오르는 산소 가는 길에는 도토리를 감추어 입이 도톰해진 배부른 다람쥐 모자가 햇살이 내려 비치는 나무 위를 타고오르며 까불고, 풍덩한 멧돼지 목욕구덩이가 드문 발걸음을 질책하며 가로막듯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