暴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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暴雪
세상 바깥으로부터,
부르르 떨고 있는 편백나무 잎
속으로 들어오는 눈. 잎은 오직 하나. 예리한 가지 끝에 걸린 폐선을 따라
나도 침잠해 간다. 오후 한시. 아도리아 창가에 앉아.
새하얀 점 점 허공에 휘날리다가, 부드러운 후박나무 가지가 좀 붉게
물들기도 하다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목 놓아 흐느끼며 눈송이들이 샹들리에 속을 꽉 채운다. 그 속에서 벌떼처럼 윙윙거린다. 제 안의 허공을 보이려
편백나무들이 스스로 피부를 갈랐다. 창백한 城이 보인다. 城의 피부는 하얗지만, 돌계단들은 허물어져 있다. 사케컵만한 소년의 시체들이 눈 내리는 침엽수림 속에 널브러져 있다. 두루미 부리같은 탑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피가 몽글몽글 솟아나오는 소년들의 내장을 보았다. 나는, 칼 끝에서, 날 세상의 끝으로 몰아갈
간절함 하나 꼭 갖고 싶었다. 하지만, 심해의 밑바닥은 심해어로 가득 차 썩은 피를 뿜어낼 뿐이다. 정각에 오는 순환버스가 피부를 벗겨낸 말처럼 새빨갛다.
나는 160년 된 유리세공품처럼 외로웠다.
스마트폰애 안전문자가 떴다. 앞으로 한 시간 동안 폭설 예정. 눈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城의 피부 안에서나 피부 바깥에서나, 뜨거운 총탄이 관통해 나간 정원의 벽이나 안구가 파열되어 죽어간 아름다운 여인의 피에 절은 기모노에서 눈은 그치지 않고 흩날릴 것이다. 그러니, 무덤의 달구어진 비석들 사이에서 만찬을 즐기는 눈송이들에게 공주의 뼈를 내어줄 밖에. 오믈렛을 자르자, 달콤한 소스와 함께 절규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멀리 멀리 눈이 쌓이고 쌓여, 즈문 고개 비릿한 계곡 아주 좁은 길조차 차마 닿지 못할 높은 지점에 공주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댓글목록
미소님의 댓글

폭설에 대한 사물들의 반응은 다 다른 것 같습니다
폭설 속의 많은 이미지들 잘 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츠루가야성에 가서 백호대라는 십대소년들이 성이 함락돠자 집단할복자살을 한 곳을 보고 왔습니다. 돌아오려다가, 폭설이 내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눈에 덮여가는 성을 한참 바라보다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