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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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친구 아빠가 씨름을 시킨다
덩치 작은 내가 뒤집기로 손쉽게 이긴다
울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온 보람이 있다
사냥개가 사납게 짖는다
유도를 배운 덩치 큰 친구 형이 나선다
단번에 나를 번쩍 들어 거꾸로 내리꽂는다
머리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개가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세운다
내 편이 없다는 서러움에 울고 싶어진다
친구 아빠가 손에 만 원을 쥐여준다
뜻밖의 횡재에 고개가 90도로 숙여진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신중하게 골라 산 과자들을 가방에 넣으니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던 게 떠오른다
과자봉지를 뜯어 엄마 아빠 앞에 놓는다
우리 가족 셋이 과자를 맛있게 먹는다
내 편이 바로 옆에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만큼 행복해진다
아무 말이 없는 엄마 아빠가
보름달 만해진 머리를
푸른 손길로 어루만져 준다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오래전 기억에 뭉클해지는군요.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김진구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쓰는 게 시가 맞는지 의심이 들고는 하는데
날건달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