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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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 / 백록
여름이 저만치 물러갔는데도
어느덧 한로의 기슭인데도
매미들이 통곡을 한다
그들의 죽음을 분명코 목격했는데도
이승에 무슨 여한이 남았는지
내게 붙어 귀신으로 산다
혹시, 우화羽化하기 전
지난날의 삶이 도로 그리운 걸까
다시 날고 싶은 걸까
네 전생의 체본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머리로 비치는 갓끈으로 보아 선비인 듯하고
나무의 깨끗한 수액만을 먹고 곡식을 축내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청렴할 것이며
살 집을 따로 짓지 않던 것으로 보아 물론 검소할 것이며
계절을 어긴 적 없었으므로 신망이 두터웠을 터
하여, 나는 그냥 너와 함께 살련다
귀찮더라도 이대로
새 알을 낳고
날아갈 때까지
댓글목록
최현덕님의 댓글

이명은 견딜만 해요
뿔에만 받히지 않으면 됩니다. ㅎ ㅎ
이명은 귀를 막아도 열어도 이명이 통곡하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매미의 지랄 때문인지
뿔이 다가오는 소릴 못듣겠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섬의 기억 / 백록
바람으로 구름으로 물결로 출렁이던 기억이 갈수록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일단 나의 첫날 같은 정유년을 소환한다
그날 새벽을 일깨우던 암탉은 이미 망각으로 묻힌 무덤 속이라
거슬러 나의 전생이 뚜렷이 비치는 무자년으로 향한다
그 가운데서 허우적거리던 할미 품속으로 간다
먼저 일제의 식민으로 서방을 잃고 나중의 혼란에 시아비를 잃고
연좌처럼 이어진 전쟁에 아들마저 잃어버린
마흔 즈음의 청상과부에게로 간다
여기서부터 종종 헷갈리는데
아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쯤 변할 즈음에
조상님들께 선보일 장손의 자격으로 간다
하루 보리밥 두 끼면 족하던 시절로 간다
뚝 뚝 끊어지는 흑백필름 속으로 간다
바람도 끊어지고 구름도 끊어지고 물결마저 끊어지고
이런저런 인연들까지 기어코 끊어져버리던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 트멍으로 얼씬거리는
그날이 언뜻
사시斜視의 사월인 듯
사시死屍의 시월인 듯
이 섬의 불안한 행간들을
힐긋 더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