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사람 소고 > 창작시의 향기

눈 사람 소고

하얀 무늬로 덮이는 오후,
골목은 어지럽게 움직인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쏟아지는 눈 아래에서
가게들은 재빨리 물건을 걷어들이고,
지워도 다시 쌓이는 흔적을
한사코 치운다.
아이들은 그저 뛴다.
세상이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듯.
그들의 발자국은
금세 사라지고,
남는 것은
길모퉁이에 세워진 눈 사람.
외등 아래 선 눈 사람,
언제까지 이곳을 지킬까.
바람이 지나며 그의 팔을 부러뜨리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는다.
차디찬 체온으로
골목의 시간과 맞선다.
“눈을 감지 말고
세상의 추위를 보아라,”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가지와 나무를 볼 수 있다
눈 덮인 소나무와 참나무 잎들의 서걱거림 속에서
세상의 비참함을 받아들이게 될것이다
바람부는 겨울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늘 그렇다는 것을
그리고 견디게 될것이다

눈 사람은 말없이
빙하처럼 고요한 얼굴로
가라앉는 밤을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