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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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길을 잃는다* /최 현 덕
폭설로 길이 덮였지만
눈속에 길은 눈을 뜨고 있다
이곳(수목장 공원),
눈꽃으로 피어난 노송 한그루
나뭇가지 끝에는 누나의
잠언 같은 말씀 한 시루가 수북하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
누나 생전에 심부전증으로 갈팡질팡
이 공원을 다녀갈 때 눈으로 수북이 쌓여
누나는 어른도 길을 잃는다며
암호 같은 코드를 눈 위에 그렸다
“야,엉뚱한 일탈逸脫이 말이나 돼?”
누나의 음성은 시리도록 쇳소리여서
어긋난 궤적軌跡은 일탈이 있지 누나
규칙적인 시각은 못 세우지 누나
엉뚱한 일탈이 말이나 돼!
무너져 내린 입자들이
누나가 눈 위에 그렸던 그림처럼
길바닥에 스미고
묘비를 쓸어 내리던 내 손은
누나가 남긴 말씀을 눈 위에 새겨 놓는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
*故 박정요 소설가의 장편소설 제목 인용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최시인님 오랫만에 인사 드립니다.
시루 속 백설기 같은 눈 쌓인 세상이 환하게 그려집니다.
그냥 흘려 보낼 수도 있는데 "어른도 길을 잃는다"라는 말씀이 정말 잠언이네요.
누나분의 말씀에서 깊은 사유를 길어 올리신 글 멋지십니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 제 맘에 담아 모셔갑니다. 감사합니다.
최현덕님의 댓글

오늘이 절기상으로 소설이지만
포근한 하루였습니다.
문우지기였던 소설가 박정요의 12주기 해 이기도 하구요.
허한 마음에서 두레박을 우물 깊숙이 내리고 물 한바가지 올려봤지만
허한건 그대로 입니다.
귀하신 걸음에 대접올릴것도 없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