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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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공주
화강암이 갈라지는
따스한 알껍질.
마지막 남은 숨결로 날개 펼친
소녀는 이제 으스른 미로 속으로 사라진다.
살랑이는 원추리꽃의 노란색은
구멍 송송 뚫린 돌로 만든
소녀의 심장을 안고 있다.
바리데기는 다시 길을 찾는다.
벼랑을 멀리 돌아가는 길이
또 다른 길을 묻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듯.
그 투명한 풍경 속,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칠월의 동백열매가 빠알갛게 물드는 순간에도
“어디로 가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소금바람의 이야기들,
희디 흰 비밀들,
천혜향의 빈집은
비린 신경 위로 물빛 기둥을 세운다.
운명은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동백꽃은 왜 여기까지 흘러와,
깃발들 사이에서 흩어지는 동백꽃은
눈부신 그녀의 이마 위에 흩어지나?
동백꽃은
마치 오래된 책의 첫 페이지처럼 열린다.
첫 페이지를 열자
나머지 페이지들은 눈을 감는다.
첫줄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그것이 배롱나무이든 동백나무이든,
바다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지운다.
소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다의 표면 위에 새긴다.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유리창 너머 바다는
무한의 도서관처럼,
흐릿한 길과 잃어버린 발자국들로 가득 차 있다.
치마를 찢어 길을 만들고
바리데기, 어머니를 찾아 먼 길을 떠난 소녀,
천천히 숨을 고르는
내 유년의 이야기.
구멍 송송 뚫린 돌로 만든 폐는
사슴을 닮은 소녀는
반쯤 닫힌 문.
책장 닫으면,
그 빈 틈에 부유하는 사람들 숨결이
버석이는 꽃들로 가득 가득
한 생을 부풀어 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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