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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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종일 제자리에 빙빙 돌며 꼬리를 물어 뜯는 개다
나는 버림받은 천사의 흘러내린 날개 옷을 매만져 입혀주는
본성을 잃어버린 순한 악마다
나는 퇴화된 눈으로 태고의 희미한 빛줄기를 기억하는 심해어다
나는 혼돈과 부딪혀야 내면 깊은 곳에서 정제된 소리를 끌어 올리는 종이다
나는 허공에 매달려 수분을 먹고 사는 틸란드시아다
나는 죽어서도 내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내어주는 가시고기다
나는 세상의 모든 틈새를 소리 없이 주물러 메우는
가장 외로운 새벽안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해독하지 못한
풍화된 상형문자다
나는 우주의 깊이를 담고 있는 눈 내리는 저녁 숲 속의 자작나무다
나는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돌 기둥이다
나는 비에 젖에 구르지 못하고 밟히는 낙엽이다
나는 무명 시인이 쓰다 버린 구겨진 문장이다
너무 많은 나 때문에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는 나다.
댓글목록
힐링님의 댓글

나란 존재의 의미를 다양하게 펼쳐 놓아
오색찬란한 무지개 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읽을수록 자아의 표현을 이처럼 맛깔스럽게
뽑아내어 엮어 놓은 이 시는
쉽게 읽고 지나는 시가 아닌 다시 한 번
묵상의 깊이를 더 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존재론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누구나 쉽게 넘기는 것이 아닌 자성의
눈을 뜨고 바라보게 하는
이 심오성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존재론적인 화법을 이렇게 술술 풀어내는
내공은 무엇일까요.
그만큼 깊은 심연을 껴안고 있는 그 시간들의
길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이 가을 끝자락에서 탐색한 묵상의 노래를
파아란 하늘빛 도는 가락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두고 싶은 가락입니다.
스퍼스톰 시인님!
사리자님의 댓글

많은 길과
많은 내가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힐링 시인님, 사리자 시인님,
말도 안되는, 저의 넋두리 같은 글에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의 제 모습과 이뤄지기 힘든 저의 바램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곤 합니다.
연약한 피조물의 한계겠지요.
감사합니다.
안산님의 댓글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인간인지에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나에 대한 정체성을 확정할 수 없어 번민의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나에 대한 정의를 확실하게 내릴 수 있다면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며 사는 게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수퍼스톰 시인님의 반가운 시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안산시인님.
저는 미사 시작 한 시간 전에 성당에 갑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성당안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데
하느님의 언어인 침묵에 기대어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역시 어렵습니다.
부족한 글에 시인님의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