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짚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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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의 독백
열기 식은 논배미에 나란히 누어
일백팔십여 일의 자서전을 쓴다
푸른 오월의 가녀린 몸으로 태어나
그 뜨거웠던 시절을 보내는 동안
마음 편히 누워본 적이 있었던가
익어간다는 건 작별을 뜻하는 언어
진 자리 마른자리 평생을 몸바쳐 키운
알토란 같은 자식들 먼저 보내고
내일이면 보시의 길로 접어들 몸
그나마 함께 묶여 떠날 동지가 있어
가는 길 외롭지는 않겠지만
한 생이 너무 짧은 것 같은 허전함
하기야 사나 죽으나 다를 것도 없지만
누군가를 살찌울 보람이 기다린다고 하니
기왕 떠나는 길 웃으며 가세 웃으며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그렇군요,
한번도 쉬지 못하고 농부의 가슴에 꿈을 안겨주고도
이젠 건초로서 마지막 보시의 길을 기다리는 볏짚,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좋은 시 감사합니다.
안산님의 댓글의 댓글

수퍼스톰 시인님 안녕하시지요.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논두렁 산책길에 본 볏짚을 보며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습니다.
삶의 목표였던 알곡을 다 빼앗기고 평생 누워본 적이 없는 맨땅에 누워
볕을 쬐는 그 모습에서 우리의 삶이 오버랩되는 건 억지일까요.
건초를 위해 사이로에 묶여 또 어디론가 이동이 되겠지요.
보시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썼습니다.
수퍼스톰 시인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건필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