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좋아하면 돈이 안 돼, 외상 이거 아주 곤란해! (제4편) -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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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外相 좋아하면 돈頓이 안 돼, 외상 이거 아주 곤란해!
사문沙門/ 탄무誕無
성문화(成文化=成文話=문자와 언어의 표기, 표현)가 발달함에 따라
선각先覺의 표현도 따라 발전했다
그래설나무래 영혼 갈어 넣어,
물음 없는 물음에 차원(표현, 비유) 올려치기 한
대자비大慈悲 4차 답 간다, 답 가!
살아 있는 자(의식이 깨어 있는 자)
얼러 냅다 받아라, 받아!
너무 착(着=執着)하고 착着해서,
순(盾=矛盾)하고도 순盾해 빠져(언어 뒤에 숨어 아주 모순되고, 모순되어)
궁리 끝에 착着하게 사는 걸 모색(摸索=알게 됨=찾게 됨)한 학인學人=학자學者들은
외상(外相= 문자와 정보와 지식=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상) 아주 좋아하고 외상外相을 즐긴다
외상外相으로 공부해 놓고
어로語路를 개척해 실체가 없는 언어(이론과 논리, 감성)를 팔아먹는다
우리 인간을 언어에 정녕 소박所縛 맞게 만든다(말과 언어와/ 정보와 지식, 감성에 묶어 놓는다)
인간을 영원히 구제해 줄 수 없고, 다시 태어날 수 없도록 한다
육신의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
붓다와 계합契合할 수 있는 영원불멸 제2의 탄생을 가리킨다(붓다와 계합한 시절인연, 몸을 바꿀 수 있는 탈바꿈을 가리킨다)
경험(체험) 없이 외상(外相= 문자와 정보와 지식=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상)으로 가르치고/ 배우면 길을 잃는다
경험이 없는 것은 올바른 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붓다)은 분단생사分斷生死를 하지 않는 데 반해
어로語路를 개척하는(발전시키는=공부하는) 학인=학자들은
나고 죽음을 반복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分斷生死를 한다
그러해도 우리 인간 본래 성품, 붓다의 생生은 영원불멸=영원불변 무사無死하다
이것이 우리 인간 본래 성품 붓다의 생生,
영원히 변동이 없고 동요動搖가 없는 것이 붓다의 진념眞念(꺼지지 않는 등불, 지지 않는 태양=다함이 없는 무진등無盡藤)
어로語路는 나기 전前 본래부터 실존하고 있는
고유한 우리 인간 본래 성품의 도로(道路/ 도道=붓다=무문無門)가 아니다
어로語路는 도로道路와 절대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어로는 도로와 절대 계합할 수 없다)
외상外相 트고 한 점수漸修는 아무리 잘 나와도 점수漸修,
수진水盡, 천진天盡, 지진地盡이 다한다 해도(물이 다하고, 하늘이 다하고, 땅이 다한다 해도)
외상外相은 돈頓이 될 수 없다
점수漸修는 집단사고의 함정(식병識病=앎병) 점수만 능사能事인 줄 알고 말이야
인간 사회(중생 문화)가 언어(이론과 논리, 지식, 감성)를 보존시키려
멀쩡한 우리 인간 본래 성품 - 타고난 붓다(본래)의 눈을 가린 까만(검정콩=활자, 문자) 봉지奉持,
객진번뇌客塵煩腦 여전무수與前無數
붓다와 만나는 데는 돈(頓= 발견, 견성)뿐이다
붓다와 계합(발견, 체득)한 확철대오만이 돈頓,
돈頓은 소득所得은 소득인데 무소득(無所得=空=붓다의 본체 공과 계합한 무無를 체득한 무소득)
붓다를 발견해야 돈頓을 바르게 알 수 있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붓다)은 이론과 논쟁의 대상에 있지 않다
붓다는 신증(神證=증득證得)의 대상이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 실존하고, 현존해 있으므로
절대적 체험, 체득, 계합, 발견/ 실지實智 깨치는 데 있다
축구(逐句= 언어를 쫓음) 좋아했으면
축구장逐句場 온 데 뛰다니지만 말고(온 데 언어만 찾아다니지만 말고-> 축구장逐句場=언어의 장터)
공(空= 인간의 본래 성품, 붓다의 본체)이라도 함 만져봐라,
이 인간아!(이 중생아!)
지금도 절대 늦지 않았다, 그지?
깨친 뒤에 외상 트고 볼 일이다(깨친 뒤에 외상 터도 절대 늦지 않다, 몇 천 겁 빠르다= 중생과 붓다의 차이다- 붓다와 계합한 붓다의 경지이므로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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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頓/
돈오頓悟의 압축된 한자어,
돈오의 단축모드/ 붓다와 계합, 발견, 체험, 견성, 단박에 깨침입니다.
이말고도 수많은 다른 형용어(수식어)가 있습니다.
수많은 다른 형용어에 속지 마십시오.
공空/
진공묘유로서 붓다의 본체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자유로운 구조가 붓다의 본체로 실존하는 공입니다.
숫자로 찾을 땐 학문적으로 배운 공은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붓다)의 본체로 현존하는 공은
학문적으로 찾을 수 있는(발견할 수 있는) 그러한 공이 아닙니다.
체험의 영역, 계합의 영역입니다.
붓다/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얼굴,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성품,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고향,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부모,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스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다른 이름과 수많은 다른 형용어(수식어)가 있습니다.
수많은 다른 이름과 수많은 다른 형용어(수식어)에 속지 마십시오.
붓다는 발견의 영역입니다. 체험, 체득의 영역입니다.
외상을 통한 지식, 정보, 학문적 영역이 아닙니다.
절대적 계합의 영역입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같은 발음이나 실제 의미는 우주처럼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탄무誕无님의 댓글의 댓글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