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단풍 > 창작시의 향기

환갑잔치하는게 소원이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내 아버지
구십 넘어 하늘로 돌아가던 날

누구보다 먼저 밭에 씨를 뿌리고
누구보다 먼저 논에 모내기를 해야
직성이 풀렸던
홍천 촌동네 욕심 많은 아버지
마지막 잔치하는 날
시월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지

고슬고슬
손톱 밑 새까만 흙이
유일한 밑천인 가난한 농부
목숨처럼 아끼던 논과 밭
자식들 학비에
사업밑천에 다 내어주고

겨우
옥수수, 감자 조금 심을
시골집 텃밭만 남은 내 아버지
하늘로 돌아가던날
초라하지 말라고
자존심 상하지 말라고
마지막은
배부른 단풍이었지

외출할 땐 늘 중절모에
양복을 걸쳐입던 멋쟁이  할배
실컷 자랑하며
곱게 곱게 외출하라고
마지막은 화려한 단풍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