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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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숲
가을숲에 서 있었다.
편백나무들만이 끝 닿는 데 없이 이어져 있었다.
산새들이 여기 저기서 나직이 울었다.
그마저도 곧 끊겼다.
정적이 시끄럽게 내 귓속에서 쩌엉하고 울리는 것이었다.
편백나무들이 아득히 높이
보이지 않는 꼭대기를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잎들을 때리고 있었다.
지상에 박힌 새하얀 기둥이 정지해 있었다.
시퍼런 하늘을
구름이 느릿느릿 떠갈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시퍼런 하늘이었다.
내 시선이 닿는 저 멀리까지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일었으나
술렁이는 잎들은 입을 막고
제 자신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잎들이 붉어가는 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조용히 소근거릴 뿐이었다.
가을숲처럼 처절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영원히 내게 닿지 못하리라.
서로 평행을 이루는 두 선들처럼
영겁이 가도 한 치도 가까와지지 못하는
이 간절함처럼 황홀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저 가을숲의 끝에 서 있는 그.
가을 내내
나도 숨 막히도록 농밀한
숲 속 정적에 머물러 있으리.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마치 제가 숲에 있는 듯
시를 읽어 내려가는 내내
행간마다 머문 정적에 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시,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