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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낮
언어의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길가에 수조를 늘어놓은 횟집
주인을 만났다. 수조 안에 농어며 광어며 옥돔이며 장어가 가득
죽음의 청록빛 속을 뻐끔뻐끔 헤엄치고 있다. 햇빛이 뜨거운 땀, 내 이마 위로 내린다. 새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나보다 먼저 이 비탈길을 올라가 버린다.
횟집 주인이 날 불러 세운다. 연극배우가 무언극을 하고 있는
허물어진 무대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기를 달라고. 폐허 속으로 날 데려간다. 그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언어들의
참혹한 구조물을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재더니, 마치 총살형이라도 집행하듯이
아무 특징 없는 구석 벽 앞에 날 세운다. 잎이 한껏 달린
가시나무 가지가 아찔하도록 벽 위에서 우수수 허물어져
내려왔다.
차가운 시멘트벽이 등에 닿는다. 모가지를 드리우시오. 찰칵. 폐허 위에는 질식하도록 아름다운 하늘이 흘러간다. 숨 막히도록 조용한
손가락으로 그는 사진기의 버튼을 찾는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을 애무한다. 폐의 질감을 체크해 보고, 췌장의 형태를 찢고 다듬는다. 내 심장의 여기 저기를 쿡 쿡 찔러 본다. 아내를 찾는다고, 아내를 보지 못했냐고.
뿔이 새하얀 사슴이 렌즈 앞에서
이것 저것 재더니 풀짝 뛰어 청록빛 연못 저 편으로 건너가 버린다. 피가 뚝뚝 듣는
망아지의 머리를 들고 춤추는 아이들이 멀리 보인다.
화가가 붓 위에 유화물감을 잔뜩 묻히더니 사슴을 캔버스 위에 그린다. 모나리자다방에서 자다 나왔다고.
전기충격치료를 받은 멍한 눈빛으로. 사내는 반토막난 굴뚝의 상반신을 닮았다. 마른 혀로 물감을 핥는다. 그의 망막 위에 누군가 빨간 선을 긋는다. 번져나가지 않는 붉음은 찰랑이는 수면 위에 멎어 있고. 사내가 그린 뿔이 하얀 사슴은
청록빛 연못 저 편에서 왔다고 했다. 사내는
바람과 구름과 폐허와 아름답게 흘러가는 여인의 틈에 서서
관자놀이에 하늘을 당긴다.
내 발자국이 땅 위로 조금 솟아난 누군가의 늑골을 찬다. 잠깐 눈 돌린 사이, 굶어 죽은 담이 수 미터나 더 자랐다.
바람이 담벼락을 기어오른 담쟁이 덩굴을 스친다. 바람이 결을 세운다. 카메라 앞에는 아무도 없고, 언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나는 언어의 위태로운 풍경 길을 따라 망고와 청귤이
현무암들처럼 쌓여 산을 이룬다는,
천막 아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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