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우회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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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혈색을 잃은 그림자가 물구나무서는
6층 내 무중력 옥탑 방
서부우회도로를 바퀴에 감은 차량들이 견인해온 소음을 내 방으로 밀어 넣고
뒷모습을 지운다
지도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바퀴에 힘을 부어 과녁을 향해 질주하는 운전자는 모른다
내 아버지와 내가 숱하게 찍어놓은 발자국 위에 올라탔음을
아버지가 봄부터 땀 흘려 가을에 누룽지냄새를 거둬들인 곳의 지도가
강제로 지워지고
서부우회도로가 깔고 앉은 새 지도를 그들이 밟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제부턴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유리창에 담긴 입김 속의 풍경,
윤곽이 흐트러진 그림자에 혈색이 도는 순간을 상상하며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딘가 조금 망가진 내가
잠시 틈새를 메우며 지상의 유배를 즐기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안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틈과 틈이 엮어낸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낡아가고 세상의 틈은 여전히 벌어져 있다
나는 꽃을 피운 적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서서 육질의 꽃을 생각했다
한 번쯤 누룽지 냄새가 출렁이던 곳에 장딴지까지 빠져보고 싶은 서부우회도로,
짧은 순간 내 그림자에 혈색이 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진 풍경화의 한 부분으로 서 있었다.
댓글목록
힐링님의 댓글

안개를 사랑 하기 시작한 무렵은
옥탑방으로부터 시작되고
이곳으로 유배 되는 삶의 변곡점을 시점이 되는데
아버지를 유추하는 과정 속에서 노동의 깊은 상실과
삶의 변두리에서 지켜보는 세상의 지도 다시 말해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걸어온 삶의 궤적이
넉넉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끄집어 시로 풀어내는 이 회화적인
동화작용을 거치는 과정까지
고뇌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하나 하나 정리 할 수 있는
지난 시간과 지금의 시간과의 화해의 시간이
감동으로 읽혀집니다.그만큼의 고통의 무게가
삶의 버팀목이라는 묵지적인 예언이자
삶의 실체를 보여주는 존재론적인 시라는 것을
확증해 보여주었음을 봅니다.
긴 시간 고뇌의 땀방울냄새가 스며납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힐링시인님,
제 글 보다 시인님께서 감평하신 글이
빛을 발합니다.
부족한 글을 예리한 시각으로 통찰하고 분석하시는 능력, 놀랍습니다.
시마을을 풍요롭게 재배하시는 시인님 늘 건필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