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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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살았다
책 꽂이 하단에 꽂힌 기도서에서
허기에 머문 거룩한 영혼의 안식 같은 긴 침묵이 흘러나와
내 얼굴을 씻는다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날에는 페이지마다 노란 지문 꽃이 활짝 핀
어머니의 기도서와 성가책을 펼친다
기도서의 겉표지에서
해진 돛이 바다의 아픔을 품었던 바다냄새가 났다
페이지를 넘길 때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책에 심어 놓은 지문들이
페이지 하단 모서리에서 노란 꽃으로 숙성되었다
끊어진 바람의 현을 이어
표류하는 목선을 견인해 주었던 어머니는
매일 밤 기도서를 펼쳐 놓고
나의 머리와 가슴이 멀어지지 않도록 촛불로 하늘을 떠받쳤다
촛불에 얹힌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로 하늘 언저리에 닿을 길을 낼 때
별도 달도 함께 성호를 그었다
엎질러진 시간이 밴 기도서의 낱 장을 넘긴다
내가 마실 샘물을 찾아가는 지도가 들어있다.
댓글목록
최현덕님의 댓글

어머니의 기도는 그 어떤 기도보다 숨결이 깊지요.
눈을 감으면서 까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기도,
그 곳이 바로 샘물이겠지요.
짠한 여운을 안겨주는 시 한편을 보며 결실의 계절 가을을 느껴봅니다.
힐링님의 댓글

이 기도의 페이지마다 어머니의 눈물 향기가 스며들어
시의 항해 하는 등대가 되었다는 생각과
세상 거친 파도에 헤치고 가는 시인님의 꿋꿋함이
이 속에 한 줄 한 줄 다 씌어진 것을 봅니다.
어머니의 기도처럼 거룩한 기도가 어디 또 있을까요.
어머니가 생의 중심추가 되어 길을 낸 생의 바다와
기도의 페이지마다 새겨 놓은 긴 시간들은
영원한 영혼의 자산인 것을 봅니다.
그러기 어머니 존재는 신이 보낸 존재하고 했나요.
읽을수록 기슴 깊이 저며오는 시심의
그 깊은 곳에 불 밝혀 놓은 기도의 촛불에
타는 효심을 오늘 다시 바라봅니다.
이제 가을도 멀지 않았으니 건강을 다 잡아
아름다운 가을의 문을 여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최현덕 시인님,
힐링시인님,
부족한 글에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밖에서 햇살로 직조한 이불을 덮고 주무시지만 제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어머니의 모습은
손에 묵주를 들고 늘 기도하시던 모습과, 어머니의 방에 놓인 십자고상 앞에서
축성받은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시던 모습입니다.
마침내 바람의 결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두신 일은
이미 창세 전에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된
복중의 복이기에 그 기도대로 후손 대대에 흘러 갈 것입니다.
낡고 손때 묻은 귀한 보물이 눈 앞에 그려지는군요.
고맙게 젖었다 갑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반갑습니다. 석류꽃 시인님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
아직까지 훼손하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아이들의 신앙생활이 때로는 제 뜻과 달라
걱정스런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