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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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이중섭에게
게며 복숭아며 해변 모래사장에 굴을 뚫고
그것이 우주인 줄 아는 비단조개가 있는 곳
을 알려준 이는 나입니다.
찢어지고 구멍난 천막이
바다를 향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짠내나는 천막이 펄럭였습니다. 집게들 사이 구멍으로 세상을 흘겨보며
옆으로 걷는 그에게 모래알들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빛나는 양철대야에
투명하고 시린 물을 담았습니다.
그는 머리 위에 우거진 두터운 청록빛 잎
들을 뒤척이며 야생 백향과 몇 개면 이 주림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비췻빛 요동치는 파도들 위를 계속 걸어가면
수면 바로 밑에 모래톱이 길게 이어져,
이중섭은 자기 방 문턱 안에 아직 누워있는
첫아이 몸에 나날이 돋아나는
한라산 중턱 향그런 고사리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싸늘한 현무암 화분 속 유채꽃의 각혈 대신,
이중섭은
자기 방 네 귀퉁이에 벗은 아이들을 하나씩 길렀습니다. 아이들의 정수리 위에
헐떡이는 천장을 못 박았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천장이
매일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내려오면,
심지를 둘러싸고 흔들리는 젊은
아버지의 형상, 아버지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식은 땀 흘리던 기름종이 봉투, 호롱불마저 급작스레 늙어 버린
손이 꽁꽁 묶인 은박지처럼
얇디 얇은 아내와
수많은 배추흰나비들로
자꾸 흩어지려는 아이들. 아내의 얼굴은 조류 따라 흘러가고
아이들의 파리한 손끝에서
자줏빛 손톱이 자꾸 빠졌습니다.
이중섭은 은박지 위에 녹슨 통통배 소리를
각인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통통배 소리는 아내의 시들어가는 배꼽까지 떠나가서
빈 칼집같은 아이들은 바싹 마르고 또 말라가서
표정 없는 문턱들이 되었습니다.
검은 한라산이 내려와
벌거벗은 이중섭을 울부짖는 황소 등 위에 놓았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황소 등에 탄 이중섭을 따라가며
박수치고 깔깔 웃습니다. 황소는 얼굴을 가리고 우도까지 휘청휘청, 이중섭은 소독약 냄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숨죽인 달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삼켰습니다. 그만 아랫목이 막혀버릴 때까지
삼켰습니다.
댓글목록
연활님의 댓글

장엄한 시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