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변조 해서 규격에 조금도 걸리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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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변조光明遍照 해서 규격에 조금도 걸리는 곳이 없다
사문沙門/ 탄무誕無
중생에게는 불치의(고치지 못하는) 생멸병(生滅病, 삶과 죽음병)이 있어설나무래
중생은 모든 것을 생멸법으로 견주어 본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장교(藏敎, 문자와 정보/ 교에 갇혀)가 되어설나무래 생멸을 떠나지 못한다
삶과 죽음이 위이(爲二, 대립)해도
깨침은, 이 두 양변에 집執하지 아니한다(금부재이고今不在二故)
붓다와 계합한 내가,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즉오진성(卽悟眞性/붓다 체험, 붓다와 계합)만이 위일능사爲一能事지
문자와 정보로 아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사후에 어떠한 묘용도 작용하지 않는다)
깨치면 생멸상으로 보고 듣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불생불멸로 보고 듣게 된다
이것을 비밀의秘密意라 한다
사전도(四顚倒, 좁은 견해) 둔근기鈍根氣 사람이 생멸을 얘기해도
받기는 상락아정(常樂我淨, 정각正覺) 부사의한 해탈로 나는 받는다
투석성보投石成寶, 투독성약投毒成藥 (사전도가 돌을 던져도 보석으로, 독을 주어도 약으로 만든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을 깨치면 말이야 (인간의 본래 성품과 계합하면 말이야)
붓다(본래 성품)의 위신력으로 말미암아
몸은 옛 몸이로되 사람이 옛사람이 아니게 된다
임자 없는 무덤의 속옷을 챙겨(이 행은 조사관祖師關)
몸이 시절인연 몸으로 바뀌게 된다
붓다의 세계에서는 육신의 몸을 몸이라 하지 않는다
육신은 세간(속세, 인간 세계)의 몸이요,
출세간의 몸(보호막)은 육신이 아니다
사전도 무명無明의 말을 듣되
미소불변고靡所不遍故로 불의이변不依二邊하고, 불의사구不依四句한다
선악이든, 생사든, 천차만별 일체 경계가 다
깨침 앞에 원융무애 해서 미소불변한다
이렇게 되는 건 생멸 변견으로 해석하지 않고 붓다의 정견(正見, 눈)으로 보기 때문,
이건 음입陰入(오음과 안이비설신의)이 개여皆如한 깨침을 통해 큰 받침을 입은 붓다의 가피력
좌우반전 비추는 거울이 물들지 않듯이
붓다(깨침, 우리 인간 본래 성품)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다(어느 곳, 어디에도 오염되지 않는다)
나의 묘리돈설妙理頓說은
전체가 원융무애圓融無碍 해서 모든 것이 다 공한 총공관總空觀,
실제 원융무애한 묘중묘妙中妙, 뜻도 묘중묘
붓다를 깨쳐야(붓다와 계합해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모른다
오직 눈 뜨고 볼 일이다(붓다와 오직 계합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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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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