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클루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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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클루의 밤
후미진 자리
낡은 천조각처럼 희미하게 앉은 사내가
손수건처럼 펄럭거리는 창밖의 풍경을 조용히 접고 있었다
가끔 갈매기 울음소리만 귓바퀴를 타고 빙그르르 굴러다니는 유리창 너머
행선지를 짐작할 수 없는 화물선들이 수평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느 봄날, 공중에 주저앉은 목련잎처럼 하얗게 겁에 질린 사내는
위태롭게 보였다
새들의 부리에 농락당하는 허수아비처럼 어둠을 삼킨 그늘 속으로
침잠하는 눈동자
셀로판지에 투과된 빛살처럼 창밖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치 여름방학 동안 단 하루도 일기를 쓰지 않은 아이가
개학 하루 전 지나온 날들을 한꺼번에 베끼는 것처럼.
그는 부러질듯한 뻣뻣한 수염을 만지며 박제된 표본이 되어
창밖으로 산화되고 있었다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명작 소설의 인물 묘사를 보는 듯합니다.
후속편이 기다려지는...문장이 수려합니다.
거장의 한폭 유화를 보는 듯한 감흥이 일기도 하는
특별한 밤의 한 정경에 스며듭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콩트 시인님~^^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시인님께서 알고 계시는
거장의 유화를 감상하고
나름, 느낀 점을 적어봤습니다.
부족한 글에 격려의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폭염 때문에 밤낮으로 헐떡거리는 요즘
건강관리 잘하시고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