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삼킨 섬 > 창작시의 향기

신화를 삼킨 섬

01시 17분 

문득 헤파이스토스가 생각나는 밤  

카페인처럼 오늘도 불면을 여행하는 중이다  

폭염으로 달궈진 한낮의 시간을 쇠모루에 올려놓고 밤하늘을 힘껏 내리쳤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천둥소리가 어둠 속 불안을 견인하고 있다  

주기도문 인양 시집을 펼쳤다  

김종삼의 시편을 읽다가 그가 좋아했다던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듣는다 

1번, 프렐류드를 듣다가 어느 여류 시인의 젊은 날 봉천동을 거닐었다  

임의의 악장 배열처럼 운명으로 포장한 신의 시나리오일지도 모를 그 길,  

그녀는 두꺼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나신을 보았다  

습자지처럼 얇은 살갗을 가진 그녀가 어느 겨울 골목길에서 사백어처럼 심장을 꺼내 들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