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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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흔들지 않으면
도무지 할 일이 없는 바람, 창세기부터 순교를 이어왔다
낡은 바지 호주머니 속을 들락거리는 바람이
낯을 가리지 않는다
바퀴살에 가득 낀 햇살을 꺾으며 떼지어 가는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의 등에서
거친 숨소리가 담긴 창백한 별이 뜬다
바퀴살에 꺾이는 햇살의 비명이 눈부시도록 하얗다
자전가의 동그란 바퀴 안에서
하늘에 떠 있는 붉은 무인도의 시간이 무채 썰리듯 썰린다
등 뒤에 창백한 별을 틔우는 사람들이
주인 잃은 발자국을 바퀴에 감고 간다
그들이 희미하게 그어놓은 바퀴 자국들은 순례길의 입맞춤으로
지구를 굴린 흔적이다
누군가 버린 손거울 속 내 얼굴에 내가 지금까지 굴린 생의 주행거리가 들어 있다
내 갈비뼈 속 어딘가에 고여 발효된 태초의 바람 냄새를 스타카토의 음표가 붙은
호흡으로 맡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등뼈로 숨을 쉬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늘 돌을 닮고 싶었던 나는 돌 썩는 냄새가 싫지 않았다
평생 복용하고 싶은 환약 같은.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지구를 굴린 흔적이" 있습니다.
힐링님의 댓글

자전거 바퀴를 순례자의 길로 승화시켜
내면의 풍경화를 그려 놓아
그 길을 따라 달려가면 천지창조의
그 끝에 다다르게 하는
차원 높은 상상력을 불어 넣어
시의 깊이를 더 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자전거 타기가
순례자로 변신 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 놓아
우리가 마치 순례자처럼
가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만큼의 치열함이 녹아들어 한 점 한 점 시어로 하여금
감동의 선물을 안겨줍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정민기 시인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위 잘 다스리셔서 건강 유지하십시오.
힐링시인님
날씨가 덥다 보니 제가 횡설수설 제 글도 더위 먹었나 봅니다.
늘 제 글 보다 힐링시인님이 끌어내시는 분석적인 혜안이 놀랍기만 합니다.
더운 날씨에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힐링시인님.
김재숙님의 댓글

<붉은 무인도의 시간이 무채 썰리듯 썰린다> 표현이 참 좋습니다 시인님
시어들이 모두 구체적이고 신선하고 참 편안하게 읽혀서 좋습니다
늘 챙겨 보고 있습니다 시인님~~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비는 오지만 그래서 더 좋은 하루 되세요 ~~^^
수퍼스톰님의 댓글

누추한 저의 집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좋은 시 들키지 않게 열심히 훔쳐보고 있습니다.
제가 많이 배웁니다.
더위와 장마 잘 다스리시어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