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沒地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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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구(水沒地區)
지금은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
공허한 건물들만 늘어선 횅한 거리를 지나서,
문득 돌아보면 한 없이 음울하고 적적하다
사람들이 떠나간지 그 얼마나 되었다고,
이내 벌써 가는 곳마다 이끼와 풀이 무성하다
정처없이 불어가는 바람에 측은히 귀 기울이면,
희미한 옛 노래가 가슴을 욱조인다
그것은 정겨웠던, 시절의 아련한 향수(鄕愁)일까...
정(情)으로 서로에게 살가웠던 주민들은
모두 서둘러 떠나가고, 을씨년히 나붙은
수몰예정지(水沒豫定地) 공고문(公告文)만
죽은 다음처럼 가벼이 마을 어귀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이제 오랜 동안 차가운 물 속에 잠길 거란 걸
이전(以前)에도 스스로 알아차렸다는듯이
마을은 창백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이곳도 한때는 따스한 사람들이 살았노라고,
저녁노을은 추상(追想)하듯 하늘에서 궁시렁거리고
싸늘하게 늘어선 빈집들만 저절로 어두워져
몰락(沒落)한 풍경을 그린다
먼데서 밤은 검은 망또를 서서히 두르고,
이제 진짜 사람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같은
마을
어디선가 등장한
날고기 탈을 쓴 박쥐 한 무리,
온 하늘을 까많게 덮는다
- 안희선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지금은 폐허가 되어"ᆢᆢᆢ
修羅님의 댓글

삼 년 가뭄 끝은 있어도, 삼 일 홍수 끝은 없다던가. 인위로 말미암은 홍수는 인간 본연조차 싹 삼켜버렸으니, 저변에 가라앉은 건 오직 흘러가지 못한 세월뿐이라...
최현덕님의 댓글

안시인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마철에 걸맞는 시제를 쓰셨네요.
수몰지구에 가서 일년 넘게 일한적이 있는데
가슴을 욱조이는 일이 다반사지요.
올해는 홍수로 수몰되는 곳이 없어야 할텐데요.
잘 감상했습니다.
선돌님의 댓글

'수몰지구' 는 지금, 혹은 이 땅에서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사실성이기도 하고,
그 사실성은 때로 냉혹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에서 諸 행위의 주체이기도 한 인간에게
'우리는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式으로
다가서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부족한 글인데..
귀한 말씀을 놓아주신
정민기 시인님,
수라 시인님,
최현덕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